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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에 있어서/석선선생님 저 새 세상의 주인들(대산출판사)

새 세상의 주인들 - 제7장 물이 되어라 3

 

 

십사만 사천 성가대의 노래!
뿐만 아니라 이곳에서는 항상 행복의 노래, 십사만 사천 성가대들이 새노래를 영원히 부르면서 행복하게 살게 된다고 말해 줍니다. 그 새노래 제목이 무엇이냐고 물으니까 “푸른 바다 파도 소리”라고 대답해 줍니다. “이곳에서 우리 십사만 사천 성가대가 새노래를 부르면 특별히 갈매기 천사들이 수없이 날아와서 아름다운 춤을 같이 추어 주며 헤일 수 없이 많은 물님들이 함께 대합창 노래를 부르게 되는데, 그러면 낮에는 구름 청중들이 수없이 몰려와서 온종일 미소지으면서 관람해 주고, 밤에는 달님과 별님들이 수없이 몰려와서 밤새도록 기뻐 즐거워하면서 열심히 들어준답니다.”라고 자세히 설명해 줍니다. 이때 누군가가 우리 곁에 와서 또 속삭여 주기를 “이 본향, 바다 신천지에는 각종 보석과 진귀한 보물들이 무진장하게 많이 있답니다.”라고 말해 줍니다.
이 모든 이야기를 들은, 여행을 마친 물들은 모두 일제히 “와! 신난다!” 소리 지르며 이곳까지 올 수 있도록 고산 지대에서부터 인도해 주신 고마우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의 노래를 밤이 가는 줄 모르게 부르고 또 불렀습니다.
 
참된 침례식
이상과 같이 물은 온 세상 만물 중에 가장 아름다운 마음과 가장 낮은 겸손한 마음, 겸비한 마음을 가진 자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30년 생애를 거의 마칠 무렵 이 물보다 더 낮은 자리(침례), 물밑을 들어갔다 나오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로 이때 마음이 겸손한 자를 가장 사랑하시는, 겸손의 본체 되시는 하늘 아버지께서는 예수가 그토록 사랑스럽고 좋아서 즉시 나타나사 반갑고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시면서 “너야말로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고 소리치셨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이와 같이 가장 낮은 물보다 더 낮은 물밑으로 내려가는 겸손한 마음을 가진 자녀들에게 하늘 아빠께서는 똑같이 기뻐 말씀하시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침례 예식의 목적이요, 새 세상의 성민이 되는 예식인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 기독교들이 예수님의 본을 따른다 하여 사람들을 함부로 물 속에 집어 넣는 침례식을 시행하는데, 이 예식에서 침례를 주는 자와 받는 자가 다 같이 물보다 더 낮은 겸손한 마음, 하나님의 마음과 예수님의 마음처럼 겸비 겸손한 마음으로 비우지 않는다면 그 예식은 거짓이요 형식으로 끝나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 아버지를 꼭 닮은 예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새 세상)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사람이 물 속에만 들어갔다 나오면 구원 받는다는 말이 아니고, 사람이 만물 중에 가장 낮은 물 같은 겸손한 마음과 생애가 되지 않으면 새 세상을 보지 못한다는 말씀이십니다. 이러한 겸손이 따르지 않는 형식적인 침례식, 또는 종교 연례 행사로 치러지는 침례식, 혹은 교인 숫자 늘리기 위한 목적의 침례식들은 거룩하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거룩하신 이름들을 망령되이 일컬어 욕 돌리는 대죄(大罪)의 죄악으로 하늘에 낱낱이 기록될 것입니다. 누구든지 지극히 거룩하신 세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불러 대는 자들에게 하늘은 결코 죄 없다 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우리가 침례 받을 때에 하는 서약에는 큰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우리는 물 무덤 속에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본받아 옛 생애를 장사 지내고, 그의 부활을 본받아 일으키심을 받아 새 생애를 살게 된다. 우리의 생명은 그리스도의 생명과 연합된다. 신자가 기억할 것은 이제부터 그가 (겸손하신)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와 성령께 속해 있다는 사실이다.”
물에 들어가 침례를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나는 물같이 겸손하게 순종하는, 하늘 아버지의 아들이 되겠습니다.”라고 엄숙한 서약을 하는 것입니다.
“침례는 가장 엄숙하게 세상을 버리는 것이다. 그리스도인 생애를 시작할 당초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는 자들은 공적으로 (교만한) 사단의 삶을 버린 것과 (겸손한) 하늘 가족의 일원, 곧 하늘 왕의 자녀가 된 것을 선포한다.”
“그는 그리스도의 죽음 속에서 자신의 죽음을 보아야 한다. … 그는 믿음(침례)으로 죄악적 생애가 끝나고 새롭고 무죄한 생애가 시작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 의식이 얼마나 의미 깊은지! 그것은 곧 그리스도교의 큰 진리의 상징이요, 믿는 자들이 그 진리를 받아들인 이중적 효과의 상징이다. 첫째로 개심자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장사 지냄과 부활을 보고 이를 상징적으로 재현함으로 그는 죄의 생애에서 의의 생애로 옮겨 사는 것이 된다. 그러나 이 침례의 정결케 하는 성격은, 곧 그의 마음에서 그리스도의 보혈(죽으심)로 말미암은 정결함을 요구한다. 다음에 그가 깨달은 것은, 그가 이제는 옛날 그때의 사람이 아니라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을 깨닫고, 또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신 이(天父)의 능력에 의하여 자신의 죽음과 ‘새 생명 가운데 새 생애를 살도록’ 하는 것이다.
침례는 인간의 생애에 일어날 수 있는 최대의 변화에 대한 상징이다. 이는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겸손한 마음으로) 옷 입었」기 때문이다 (갈 3:27). 침례를 받은 영혼은 새 세상에서 살 성민이 되는 것이다. 그는 이미 죽었(無我)으므로 옛 악습에는 아무 상관이 없다. 성서에는 그가 죄에 대하여 죽고 하늘과 교제하는 새 생애를 살도록 다시 일으킴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와 그의 지난 생애 사이에는 물 무덤(침례)이 놓여 있다.”
“침례는 모든 사람들이 다 목격하는 생애의 큰 변화의 외적 증거로 하늘 앞에서 서약을 하는 것이므로 지나치게 조급히 침례를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오늘 취하고 내일은 내버릴 행위가 아니다.”
“영혼에게 생명을 주는 것은 그리스도의 은혜이다. 그리스도(마음과 품성)를 떠나서는 침례도 다른 의식과 마찬가지로 무가치한 형식에 지나지 아니한다. 하나님 아들을 (따라)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새 세상의) 영생을 보지 못하리라.”
침례는 “그 개심자들이 그 창시자 되신 그리스도의 발걸음을 정확히 따르는 것(무아의 생애)을 요구한다. 그들이 이같이 하는 때에만 그리스도인이요, 참된 침례 예식에 들어간 자들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겸손하신 무아적인 생애가 되는 마음과 품성이 따르는 생애를 살게 하지 않는, 형식으로만 그치는 모든 침례 예식들은 거짓이요 가증스런 죄악들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물같이 겸손하고 물보다 더 낮은 겸비한 자, 곧 「물…로 나지 아니하면」 겸손하신 그리스도와 겸손하신 「하나님(친아빠)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요 3:5).
성서 전체의 모든 초점이, 마지막 때에 보혜사 성령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영혼과 마음속에 실질적으로 마음의 천국이 이루어짐으로 우리가 영원한 새 세상에 들어가 살 수 있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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