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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에 있어서/석선선생님 저 새 세상의 주인들(대산출판사)

새 세상의 주인들 - 제11장 새 세상의 주인들 9

 

 

왜 우리 아버지께서 한국을 영광스럽게 하시는가? 그것은 영광스럽게 드높여서 세계가 바라보게 한 다음에 여기서 최후의 구원의 도, 사랑의 도, 영원한 영생의 도를 드러내려고 하신 섭리이셨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것이 지구의 마지막 추수 사업의 끝인 것입니다. 시대마다 성서의 모든 예언은 그 당시 세계의 종교 중심부에서 터뜨리고 끝났습니다. 옛날 예루살렘이 중심이었을 때는 이스라엘에서 터뜨렸고, 로마가 중심이었을 때는 로마에서 터뜨렸고, 근세에는 미국에서 터뜨렸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은 한국이 세계의 종교의 중심입니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참과 거짓과의 싸움에서 이기면 세계의 승패는 끝나는 것입니다. 가장 치열한 영적인 싸움의 전쟁터는 한국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 대통령들이 대대로, 자기 보좌를 내걸고 한국을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월남같이 포기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미국이 목숨을 내놓고 한국을 지키는 것은 자기 나라의 국익을 위함도 있지만 우리 하나님, 하늘 백악관에서 “너희는 한국의 호위병이 되라.”고 명령을 내리셨기 때문에 미국 대통령들이 “내 보좌를 놓고 한국을 지키겠노라.”고 서약을 해 온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한국을 왜 이렇게 사랑하시는가? 그것은 도덕이 덜 부패됐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불사의 나라, 새 세상의 씨 받을 백성을 골라낼 사명을 받은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서양이 물질 문명이 앞선 것 같아 좋은 줄로 알지만 알고 보면 그것은 도덕의 타락을 가져왔습니다. 우리는 한국 고유의 아름다운 도덕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요새 우리 한국의 도덕이 급속도로 부패하고 있습니다. 한국 고유의 아름다운 도덕이 망하면 한국도 망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가정 주부들이 술 먹고 춤춘다는 것은 얘기도 못 들어 본 일입니다. 술집에 있는 창녀나 술 먹고 소리지르고 춤추지, 가정 주부들은 밖에 얼굴 내놓는 것도 원치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가정 주부들이 거의가 창기들이 되어 술 먹고, 남의 남자 붙잡고 춤추고 불륜을 맺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관광이란 이름 아래 놀러 가서는 별의별 남자를 다 붙잡고 춤추며, 사교란 이름 아래 모두 음란에 빠졌습니다.
이것은 얼마나 서글픈 일인지 모릅니다. 이것이 바로 한국이 망할 징조입니다. 예수께서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그후에는 다만 밖에 버리워 밟힐 뿐이라.”고 하셨습니다. 한국의 소금 맛은 도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국의 도덕성의 아름다움을 보시고 한국을 사랑하사 마지막 세계의 구세주로, 새 천년 새 세상의 인도자로 택하신 것을 알고, 지각 있는 백성들만이라도 한국의 아름다운 도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거듭 말하지만 요새 급속도로 한국의 도덕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새파랗게 젊은 처녀, 부녀자들이 남의 남자 자가용을 탁탁 세워서 타고 어디론지 갑니다. 남의 남자 오토바이까지 세워 타고는 남자 허리를 붙잡고 갑니다. 그래 놓고서 불만이 있으면 강간당했다고 합니다. 참으로 얼굴도 뻔뻔스럽습니다. 남의 자가용 세워서 타고 가고, 남의 남자 허리 붙잡고 가던 사람이 어떻게 강간당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것은 계획적인 유혹이요, 뻔뻔스럽기 그지없는 주장입니다. 요새는 오히려 여자가 남자를 낚는다고 합니다.
나도 그전에 한 번 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전라도 시골에 살 때 큰길을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어떤 여자가 뒤에서 비명 소리처럼 “아저씨! 나랑 같이 가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무슨 위급한 환자가 있어서 약방에 약 지으러 갔다 오는 사람인 줄 알고 나도 바쁜 사람이었지만 자전거를 세웠습니다. 그랬더니 처녀인지 각시인지 모를 정도로 새파랗게 젊은 여자가 달려왔습니다. “웬일입니까?” “저하고 같이 좀 가요.” “그럼 뒤에 (짐 싣는 데) 타시오.” 했더니 자전거에 앉자마자 내 허리를 꽉 껴안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오르는지 …. 그렇다고 남자가 한번 타라고 해 놓고 금방 내리라고 변덕을 부릴 수도 없고, 그냥 가려니 얼굴이 화끈화끈하고, 그저 꼼짝 못하고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왜 그렇게 무거운지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도저히 더 이상 갈 수 없어 가다가 똑바로 계속 가야 할 텐데, “나는 이쪽으로 가야 합니다.” 하고 핸들을 엉뚱한 길로 틀고는 그 여인을 내리게 하고 물어 보았습니다. 듣고 보니 큰길 옆 방앗간에 갓 시집 온 며느리였습니다. 남의 남자 허리를 안고 가는 모습을 남편이나 시아버지가 보았으면 어떠했을까요? 그러나 그 여인은 그것 상관없이 끌어안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 각시의 과거가 의심스러웠습니다.
우리 어머님이 잠드셨지만, 나는 우리 어머님이 젊으셨을 때 우리 아버님 출타하신 후 동네 이장, 반장이 세금 걷으러 오면 얼굴을 맞대고 세금 주시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시선을 딴 데 보시면서 건네주셨습니다. 옛날 한국 여성들은 남자가 길 지나가면 다소곳이 길옆에 서 있다가 남자가 지나간 다음에 자기 길을 가는 그런 아름다운 미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국의 여성들은 아름다운 점이 한둘이 아닙니다. 시집 가서 그렇게 구박받고, 설움받고 살면서도 오직 한 남편을 위한 열녀가 되어 남편이 죽을 때 같이 따라 죽는 여인들도 있었습니다.
또 한 임금에게 충성하여 단근질 고문을 당하면서도 “이 인두가 다 식었으니 새 인두 가지고 오라.”고 소리지르면서 죽은 충신들도 있었습니다. 또 기근 시에 부모에게 자기 허벅지 살을 베어서 끓여 드린 효자들도 있었습니다.

 ps:대산출판사 석선선생님 저 새 세상의 주인들은 new.doalnara.com에서 만나보실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