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집을 떠난 나는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거칠고 험한 세상을 다니면서 여러 가지 세상의 가장 밑바닥 일과 밑바닥 직업들을 가져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그 속에서 우리 구세주의 수고와 고생과 고독과 가난을 맛보았으며, 세상의 가난하고 외롭고 궁핍한 사람들의 사정도 잘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생활에서 자비와 동정과 긍휼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내가 경험한 일들은 그것뿐이 아닙니다. 공사판에 가서 막노동 품팔이도 해보았고, 떠돌이 행상인도 되어 봤고, 길바닥에 앉아서 남의 신발을 기워 주는 구두 수선장이도 되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어디 가서 무슨 일, 무슨 고생을 할지라도 부모님을 원망해 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부모님이 신앙을 반대한다 하여 집에서 스스로 내가 먼저 나온 적도 없습니다. 오직 부모님이 쫓아낼 때에서야 나왔습니다. 부모님이 쫓아내지도 않는데 부모님이 신앙을 반대한다 하여 스스로 부모님을 배신하고 나오는 것은 불효 자식입니다.
우리는 비록 부모님이 신앙을 반대하고 핍박해도 끝까지 그 부모님을 받들고 섬겨야 합니다. 그러다가 부모님이 쫓아내면 그때는 할 수 없으니 나와도 되는 것입니다. 나는 크게 나눠 네 차례 쫓겨난 것이지 작은 핍박까지 따지면 더 많았습니다. 어떤 때는 낮에 이불을 짊어지고 쫓겨나기도 했고, 어떤 때는 밤중에 자다가 쫓겨난 적도 있으며, 어떤 때에는 여름철에 쫓겨나서 갈 곳이 없어 성전 기도실에서 기도하다 잠이 들면 모기가 얼마나 얼굴을 물어뜯는지 아침에는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위를 쳐다보니 기도실 천장에 공기통이 크게 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지붕 천장 속에 있는 모기가 다 내려와서 내 얼굴을 뜯은 것입니다. 그런 기도실에서 여러 날을 자면서 목회자 사택으로는 들어가질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나로 인해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렇게 다녔지만 나는 부모님께 설 때와 추석 때, 그리고 생신 때가 되면 꼬박꼬박 편지를 써서 내가 번 적은 돈과 같이 편지를 부쳐 드렸습니다. “아버님, ○○ 날이 아버님 생신입니다. 이 불효 자식을 용서하여 주시고 잡수시고 싶으신 것이 있으면 사 잡수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늘 보내 드렸습니다. 그러면 내 편지를 받으신 아버님은 “누가 제 놈보고 돈을 보내랐느냐?” 하시면서 돈을 방바닥에 던지시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아버님의 속 심정과 사랑을 알기 때문에 그것은 본심이 아니요 가족들 앞에 그냥 던지시는 것뿐이지 속마음으로는 아들 걱정으로 못 견디게 괴로워하신다는 것을 알고 아버님을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그후에 나는 고향 집에 잠깐 들렀습니다. 일생 동안 눈물을 모르시는 아버님, 어린 자식이 죽어서 손수 갖다 묻고 돌아오셔도 눈물 없이 밥을 드셨다는 아버님께서 나 때문에 소리내어 우시는 것을 처음 보았습니다. 나와 어머님은 이쪽 방에 있고 아버님은 아버님 방에 계신데 일생에 처음 우시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아들 넷 중에 너에게 제일 기대를 걸었다. 그런데 네가 이렇게 불효 막심한 자식이 될 줄 몰랐다.” 하시면서 우시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의 어떠한 핍박도, 시련도 능히 다 이길 수 있었지만 이 시련만큼은 참으로 이기기 힘든 시험이었습니다. 당장 아버님 방에 뛰어들어가 “아버지, 이제는 신앙을 하지 않겠어요. 아버지, 우시지 마세요.” 하고 싶은 마음의 충동이 막 일어나려 했습니다. 나는 이 마지막 시험에서 간신히 견디어 승리했습니다. 우리는 부모님을 보이는 하나님으로 섬겨야 할 것은 사실이나 하늘에 계신 하늘 아버지 이상으로 섬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부모님 명령과 하나님의 명령이 상반될 경우에는 우리는 하나님 편을 좇으면서 부모님을 섬겨야 합니다. 그것이 부모님을 살리는 길이요, 부모님께 대한 진정한 효의 길인 것입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엡 6:1).
그래서 나도 그 시간 동안 부모님과의 가슴 아픈 투쟁을 하다가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얼마 후 아버님은 나를 집으로 들어오라고 하시면서 결혼시켜 주고 재산을 줄 테니 내가 원하는 사람과 결혼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아버님께 나는 한 가지 조건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버지, 셋째 아들은 아들이 아닙니까? 만약 저를 꼭 결혼시키시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라면, 부모님이 저와 같이 사신다면 제가 결혼을 하고, 같이 사시지 아니하신다면 저는 결혼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부모님을 꼭 모시고 싶었습니다. 아버님은 “그 문제는 결혼한 후에 논하기로 하고 일단 결혼이나 해 놓고 보자.” 이리하여 지금의 아내와 결혼하게 되었는데 아버님은 신앙하는 며느리를 쾌히 승낙하시고 수백 리나 되는 남원 교회까지 오셔서 예식에 참여해 주시고 사양하는 결혼 반지와 예물까지 강권하여 해주시면서 축복해 주셨습니다. 아버님께서는 결혼 후 한 달 만에 우리를 분가 내주셨습니다. 할 수 없이 아버님을 떠나 분가 나온 우리 부부는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하여 정성을 바쳤습니다.
회갑 날이 돌아왔을 때에도 우리는 우리보다 생활이 풍부한 형님들이 미처 생각지 못한 아버님 시계와 두 분의 금반지와 성서를 각각 선물해 드렸습니다. 부모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사치용 반지를 끼는 것은 안 될 일이지만 하나님을 모르시는 부모님들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해서 부모님께서 이해하실 때까지 반지 정도 선물해 드리는 것은 합당하고 현명한 일인 것입니다.
어느 독실한 처녀가 믿지 않는 가정으로 시집을 가서 먼저 시아버님 담배 쌈지를 예쁘게 만들어 드린 후에 1년 365일 매일 아침마다 큰절을 올리고 나니 하루 아침에는 시아버님이 며느리보고 “아가, 내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하고 물으시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며느리는 공손히 대답하기를 “예, 제 소원은 아버님께서 저희와 같이 신앙하시고 하늘 가시는 것입니다.” 하니 시아버님이 “오냐, 알았다. 오늘부터 내가 네 말대로 하겠다.” 하시고는 며느리 보는 앞에서 자기 무릎으로 긴 담뱃대를 딱 분지르고 며느리가 만들어 준 담배 쌈지도 불태우시고 아들, 며느리 이상으로 하나님을 잘 섬기시다가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우리는 믿지 않는 부모님들께 술이나 담배나 그 밖의 해로운 것을 사 드려서는 안 되겠지만 그 외 해가 되지 않는 것들로는 무엇을 해서든지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 드려야 합니다. 그 다음에 자녀들의 효성에 감동을 받으신 부모님들이 후에 깨달은 뒤에는 모든 해로운 것은 스스로 뉘우치고 자연히 버리시게 되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부모님들에게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은 믿는 자녀들의 효성스러운 사랑입니다. 우리는 바리새인들처럼 지나치게 의인 되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참된 의(義)는 오직 사랑이요, 참된 의인(義人)은 모든 인류를 사랑으로 받들고 돌보아 정로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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