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이야기/존경하는 인물 이순신편

희생을 감내하는 정신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의 정신적 지표로서의 충무공 정신 중에서 나라를 사랑하는 정신, 정의를 실천하는 정신, 책임을 완수하는 정신, 창의로 개척하는 정신을 도출했다. 그러나 이러한 기본 정신들이 종합되어 완전히 우리와 나의 생활지표로서의 결실을 맺는 정신이 있다. 그것이 바로 희생을 감내하는 정신이다. 왜냐하면 모든 정신이 희생을 바탕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에는 완전한 것이 될 수 없고 또 희생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희생이란 적극적인 사고가 있으면 불가능하며, 그것은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몸을 바쳐 일하며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는다는 것이며, 감내(堪耐)란 희생과 관련하여 모든 고통을 참고 견딘다는 뜻이다. 따라서 어느 나라나 어떤 조직체를 막론하고, 전체적인 단결과 화합에 의한 발전을 이룩하려면 작은 가치를 지불함으로써 더 큰 가치를 획득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희생이란 표현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순신은 성장할 때부터 ‘나라와 겨레를 위하여’라는 확고부동한 국가관과 사생관(死生觀)을 간직한 분으로서 언제나 희생을 바탕으로 맡은 직무를 수행하였다. 또한 이순신은 관직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희생에 대한 어떤 보답이나 대가를 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구애됨이 없이 나라에 헌신하려 했다. 그러나 그러한 희생을 남에게 강요하지는 않았다.

이순신이 함경도의 조산보 만호로 있으면서 다시 녹둔도의 둔전관을 겸임하게 되었을 때의 일이었다. 모든 것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불시에 수많은 오랑캐의 침범을 받아, 전투를 지휘하다가 왼편 발꿈치에 화살을 맞았으나, 그 고통을 참고 견디었으며, 전투가 끝날 무렵에 혼자 돌아앉아서 칼을 뽑아 화살촉을 제거하자, 이를 본 군사들이 모두 놀랐던 것이다. 이러한 이순신의 태도는 적을 무찔러야 한다는 목적아래 신념과 용기와 투지로써 일신의 고통을 참고 견딘다는 희생정신에서 우러난 것이었다.

그런데 그 날의 전투보고를 받은 병사 이일의 시기로 말미암아 포상은 고사하고 생각하지도 않은 백의종군을 당하게 되었으니, 그 당시 이순신의 심정은 어떠하였겠는가. 그러나 자기가 맡은 책임과 관련하여 병마사에게 불려 들어가면서도 이순신은 초연했다.

“죽고 사는 것은 천명(天命)이다.”

여기서 우리가 다시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이순신이 우리에게 보여 준 그 희생이 “자기 한 몸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작은 자기 자신을 희생시키는 정신 자세가 너무나도 확고하였다.”는 사실이다.

이순신 장군은 군인으로서의 사생관이 확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적의 화살이나 총알에 맞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두려움을 추호도 생각하지 않았다. 오직 ‘승리’ 한다는 신념과 의지력이 앞섰던 것이며, 한 번이라도 패배한다는 절망감은 갖지 않았던 것이다. 명량 해전만 보더라도 10배 이상의 적선을 향해 진두에서 독전함으로써 승리를 이룩하였던 것이다. 그러한 승리의 요인 중에는 이순신이 해전을 치르기 전에 부하들의 마음을 하나로 통일시켰던 것이다.

“병법에 이르기를 ‘죽으려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고 하였고 또 ‘한사람이 길목을 잘 지키면 천 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는 말이 있는데 모두 오늘 우리를 두고 하는 말이다.”

“적이 비록 1000척이라도 감히 우리 배를 덤벼들지 못할 것이다. 조금도 마음을 동하지 말고 힘을 다해 적을 쏘아라!”라고 격려한 내용으로 보아, 이순신을 뒤따른 수군들은 이순신이 스스로 책임을 완수하면서 희생정신을 본보였기 때문에 우리의 고귀한 교훈의 덕목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임진왜란에서 육전이 여러 곳에서 부진하였던 반면에 바다에서는 이순신이 지휘하는 수군만이 오로지 이길 수 있었던 것도 이순신을 비롯한 수군들이 희생을 감내하는 정신으로 싸웠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특히 사천해전을 보고한 장계에 따르면 해전에 참가하여 전사상한 부하들의 포상을 건의하면서도 자기 자신에 대하여는,
“적의 철환이 신의 왼편 어깨를 맞히고 등을 뚫었으나 중상에 이르지는 않았습니다.”고 하여 철환이 등을 뚫었을 때도 어떤 반대 급부를 바라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잠시도 쉴 생각을 갖지 않고 다음 날부터 계속된 당포ㆍ당항포 등 여러 해전을 지휘하였으니, 이순신의 애쓰는 참모습을 지켜 본 군사들이 어찌 이순신의 참다운 희생정신에 감동되지 않았겠는가.

더욱이 이순신은 싸움터에서도 밤이면 군사를 휴식시키고, 자신은 화살을 다듬기도 하면서, 어렵고, 힘들고, 위험한 일이면 먼저 행하였을 뿐 아니라, 적의 총환이 좌우로 떨어져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이 당하는 어려움은 부하들의 고통에 미치지 못한다고 하였으니, 부하를 위하는 이순신의 자세에서 참다운 희생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순신은 억울하게 백의종군의 고행 길에 어머님을 잃게 되는 슬픔과 함께 통제사로 다시 임명된 뒤에는 사랑하는 아들을 잃게 되는 등 어느 누구에게도 비길 수 없는 슬픔과 괴로움을 당하기도 했으나, 불굴의 인내와 용기로써 집안일에 정신을 낭비하지 않고, 오직 나랏일, 즉 적을 무찌르는 일에 온 정신을 쏟았던 것이며, 한 번도 낙심하거나 포기하거나 중단하려 하지 않고 자기 사명과 의무에 충실하려 했으니, 여기에는 이순신의 고귀한 희생정신이 있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순신은 임진ㆍ정유재란의 막을 내리게 하는 노량ㆍ관음포 바다에서 명나라 수군도독 진린이 이순신에게 말하기를 “내가 밤에 천문(天文)을 보니 동방의 장수별이 희미해 가오. 옛날에도 기도한 사람이 있었으니 당신도 해 보시오!” 라고 하였을 때, 이순신은 죽음을 앞둔 사람으로서 오히려 더 느긋하게,
“정성과 재능이 다 옛 사람만 못한데, 기도하는 것이나 본뜨면 무엇 하겠소.”하고 답하였으니, 이순신의 의연한 자세와 함께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희생정신이 순국 직전까지 변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 원수만 무찌른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나이다.”고 순국 직전 한밤에 함상(艦上)에서 조용히 축원하기도 했다. 이는 이순신의 일생을 대변하는 유언으로서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실로 이순신이 우리에게 가리켜 준 ‘희생을 감내하는 정신’은 나라를 위해 사생관(死生觀)을 확립하여 적극적인 의기와 정열로써 신명을 바쳐야 한다는 것을 행동을 보여 준 것이었다.

'나의 이야기 > 존경하는 인물 이순신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웅의 탄생과 배경  (0) 2013.02.07
정신으로 본 군사전력  (0) 2013.02.06
창의로 개척하는 정신  (0) 2013.02.04
책임을 완수하는 정신  (0) 2013.02.03
정의를 실천하는 정신  (0) 2013.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