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은 덕수 이씨 12세 손으로 1545년 4월 28일 한성부 건천동(서울 인현동)에서 부친 덕연군 이정의 4형제 중 셋째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병정놀이에서 꼬마 대장이 된 순신은 책에서 읽은 작전을 병정놀이에서도 적용하며 훗날 조선수군의 통제사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일례로 "오늘은 새로운 작전을 지시하겠다. 공격하는 적군은 윗마을 병사들이 맡고 수비는 아랫마을 병사들이 한다. 수비하는 병사들은 반으로 나눠 따로 진을 치도록 하겠다" "수비하는 반은 나무 뒤에 진을 치고, 그 나머지 반은 저 아래쪽 개울가에 진을 친다. 그러면 반드시 이길 수 있을 거야. 뒤에 개울이 있어 뒤로는 절대 적군이 쳐들어 올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배수의 진'이라는 거야. 강이나 바다를 등지고 치는 진으로 옛날부터 많은 승리를 거둔 작전이다" 라는 일화가 있다.
청년시절 이순신은 문무를 두루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순신은 글공부에도 자신이 있었지만 무과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기로 작정하고 북쪽의 오랑캐와 남쪽 왜적들로부터 부모와 백성들을 지키고자 하여 군사에 관한 책을 읽을 뿐만 아니라 말타기 연습, 활쏘기, 칼쓰기, 창쓰기 등의 무예를 연마하였다.
이순신이 21세 되던 해, 1565년 (을축, 명종 20년) 8월 보성 군수 방진의 여식 상주 방씨와 결혼하여 22세 (병인, 명종 21년)되던 해 10월 무인이 될 것을 결심하고 무술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1567년 (정묘, 명종 22년)에 2월 맏아들 회가 태어나고 27세 되던 1571년 (신미, 선조 4년) 2월 차남 울(蔚)이 태어났다. 이순신의 나이 28세(임신, 선조 5년)에 훈련원 별과 시험에 응시 중 말의 실족으로 왼쪽 다리에 골절상을 입어 과거에 실패하였고 32세 (병자, 선조 9년) 2월에 식년 무과 병과 4등으로 급제하여 동년 12월 함경도 동구비보 권관으로 임명되었다. 이순신의 나이 33세 (정축, 선조 10년)에 삼남 염(苒)이 태어났고, 후에 면으로 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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