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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에 있어서

"하나님은 살아계시는구나!"

오영자.PNG
 
 
 
나는 올해 75세로,
2남 2녀를 두었다가 막내를 끔찍하게 잃었다.
  
어느 해 봄,
그 당시 막내아들이 나이가 26살이었을 때였다.
일요일이었다.
 
월요일은 말씀 세미나가 있어서 참석하려고 부지런히 공동 일을 하는데
아들이 오더니 “엄마!…” 하며 어깨를 주무르더니 “몸 좀 아끼셔요….” 하고
“저 먼저 갈게요.” 하면서 인사를 하는데
나는 바빠서 아들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로 “알았어, 먼저 가!”라고 했다.
친구 용돈을 벌어 주려고 일을 하러 가는 중이었다.
 
그때가 오후 무렵이었다.
오 장로님이라는 분이 집에 갑자기 오셔서
“집사님 어디 좀 같이 가셔요!” 하시면서 빈 속인지라 우동을 시켜 주시는데
나 하나만 시켜 주시고는 갈 곳이 있다고 어서 드시라고 한다.
우동을 다 먹고 나서 차를 탔더니 그제야 어려운 말씀을 하신다.
“아드님이 차 사고가 났어요….”
원주 병원에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응급실로 나를 데리고 가는 줄 알았는데 차에서 내리자 남동생 둘이 양쪽 팔을 부축하며 인도하는 대로 가 보니 기가 막히게도 영안실로 가고 있었다.
가보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나는 실성한 사람처럼 정신이 나갔다.
 
입관하려고 하다가 그래도 어머니를 마지막 가기 전에
한 번 보여 드려야 한다고 해서 가보니… 눈물이 앞을 가리고,
아들 얼굴을 만지려 하니 사람들이 못 만지게 한다.
 
그런데 그 순간, 기가 막힐 일이 일어났다.
 
기적이었다.
 
입관을 하려고 시체를 놔두었는데 갑자기 내가 얼굴을 만지려는 순간
죽은 아들이 얼굴이 환해 가지고 웃는 것이 아닌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땡땡 얼어 있는 시체가 웃느라고 얼굴이 쪼글쪼글해지는 것이었다.
믿음이 없는 나를 위해 하나님께서 이적을 보여 주신 것이다.
 
그때 하나님도 믿지 않는 내 동생들이 그 광경에 다 같이 보며 너무나 놀라서 하는 말이
“하나님은 살아계시는구나!” 하였고 나도 하나님께 대한 확신이 섰다.
 
경황없이 장사를 치르고 아들 방을 바라보니 기가 막혔다.
아침에 어깨 주물러 주며 “엄마 몸 좀 아끼셔요!” 하고 나간 아들이 시체로 돌아왔으니….
생때같은 자식을 묻고 돌아오니 어디다 대고 울 데가 없어서 산에 올라가서
철퍽 앉아서 하염없이 우는데
울면서 앞산을 보니 친아버지의 사랑이 내리비쳐
혹독한 추위 속에 가지마다 중생의 잎이 피어나고 성화의 꽃이 피어나는 것이 보였다.
조금만 있으면 부활의 아침에 아들을 만날 수 있다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주시는데
얼마나 마음이 편하던지,
고통스럽던 마음이 평안하고 기쁨으로 바뀌며
온 하늘과 만물이 환영하며 박수갈채를 보내는 것이었다.
 
어느 어미가 아들을 묻고 이런 마음을 가질 수가 있겠는가?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이적이었다.
석선 선생님께 무한히 감사드린다.
 
그 후 2~3개월 있다가 제주도에 있는 작은딸한테 전화가 왔다.
그동안 엄마가 걱정할까봐 말을 안 하고 있다가 도저히 해결이 안돼서 전화를 한 것이었다.
 
이유인즉, 외손녀가 밤 12시만 넘으면 베개를 들고
신들린 사람처럼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엄마가 놀래서 “너 어디 가냐?”고 물으면
“죽은 외삼촌이 오래!” 하면서 간다는 것이다.
얼마나 기가 막히고 까무러칠 일인지 딸을 데리고 들어와
말리고 때려도 그 다음날 또, 그 다음날 시간만 되면 또 나간단다.
참다 참다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이었다.
 
전화를 끊고 작은딸 집으로 갔다.
그리고 손녀 아이를 데리고 기도하고 석선 선생님의 시집을 아이 머리 위에 놓고 잤을 뿐인데 그날부터 아이의 귀신 붙은 이상한 행동이 없어졌다.
시집이 무슨 귀신 쫓는 염불도 아니건만
그 아이한테 있던 귀신이 다시는 아이를 괴롭히지 않았다.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했던지….
석선 선생님께 너무나 감사하다.
 
참 하나님을 모시고 살면서 안식일을 잘 지키니
모든 복이 굴러들어 와 우주 최고 행복자가 따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