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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에 있어서/석선선생님 저 새 세상의 주인들(대산출판사)

새 세상의 주인들 - 제9장 소금 되어라 7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 5:13).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세상의 귀한 황금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소금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귀한 자녀들을 하필이면 왜 그런 흔하고 값싼 소금에다 비유하셨을까요?
소금은 이 세상에서 제일 큰 나라, 바다 나라에서 나온 친구입니다. 땅이 아무리 넓다 해도, 대륙이 아무리 광대하다 해도 바다의 삼분의 일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소금은 이 큰 바다, 미국과 소련의 수십 배나 되며 지구 전체 땅보다 세 배 이상 더 큰 바다 나라에서 왔습니다.
 
소금은 썩지 않는다
그렇게 큰 나라에서 온 소금이 세상에 나와 보니까 몇 평 되지도 않는 조그마한 밭뙈기에서 올라온 채소들이 얼마나 뻣뻣하고 교만한지 세상 넓은 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소금은 “야! 나는 이 세계에서 제일 큰 나라에서 왔단 말이야! 네가 뭐 잘났다고 그렇게 교만을 피우고 잘난 체하느냐?”라는 비방의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조용히 그에게 다가가서 사랑으로 어루만져 주니 그토록 교만, 뻣뻣하고 너풀거리던 채소가 그만 단번에 변화되어 온유, 겸손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채소는 자기가 제일 잘났다고 뻣뻣하고 너풀거리면서도 왜 그리 썩기는 잘 썩는지 금방 부패되어 냄새를 풍기며 죽습니다. 그런데 이 소금은 자기의 신분도 이름도 드러내지 않고 어디서 왔다고 밝히지도 않은 채, 금방 썩어서 제일 먼저 죽어 사라질 한심한 채소에게 가까이 가서 그의 교만을 꾸짖는 대신 사랑으로 어루만져 주어 금방 온유, 겸손하게 변화시켜 오래 살아도 죽지 않는 친구로 만들어 줍니다. 이렇게 소금이 채소를 온유, 겸손한 채소로 변화시키니까 사람들, 즉 하나님의 아들딸들이 그 채소를 가져다가 좋아라 먹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소금이 변화시킨 채소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몸 속에 들어가 피가 되고 살이 되어서 영원히 죽지 않는 불사의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 소금이 그렇게 변화시키지 않았더라면 그 채소는 금방 썩어 버려 영원히 그 존재도 없어졌을 것입니다. 채소들을 변화시켜서 영생하도록 만들어 주는 자는 이 세상에서 오직 겸손한 사랑의 소유자, 소금뿐입니다.
소금은 억만 년이 가도 썩지 않습니다. 채소는 썩고 사람은 변질되고 타락하여 죽었다고 하고, 모든 산천초목, 큰 나무들도 쓰러지면 다 썩어 없어지는 등 모든 것이 다 썩고 변질되어 없어지지만 소금은 변질됐다거나 썩어 타락했다는 소리를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얼라, 소금이 쉬었네. 소금에 곰팡이가 났잖아!” 하는 소리를 들어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천만 년, 억만 년이 가도 소금은 썩지 않습니다. 어떤 더러운 오물이나 심지어 썩어 가는 생선 위에 끼얹어도 오히려 그 생선으로 더 이상 썩지 않도록, 현상 그대로 보존되도록 지켜 줄 뿐 절대로 썩거나 변질되는 일이 없습니다. 또한 소금처럼 변덕을 모르는 거룩한 자는 세상에 없습니다. 그는 장래에도 영원토록 썩거나 타락을 모르는, 곧은 마음의 친구로 살게 될 것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소금
하늘이 가르치려는 참소금은 누구일까요? 참소금은 바로 우주에서 제일 높고 가장 큰 나라, 하늘 나라에서 오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은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는(히 7:3),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타락이 무엇인지, 죄가 무엇인지, 변질이 무엇인지 모르는, 영원한 소금 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풀 같은 인생, 채소 같은 제자들에게 “내가 우주를 썩지 않게 하는 큰 소금이 된 것같이 「너희(도) 세상의 소금이」(마 5:13) 되어 세상을 썩지 않게, 타락하지 않게 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그래서 성서에 인생을 채소, 곧 풀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육체는 풀이요」(사 40:6)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사람은 채소, 곧 풀 같은 인생인 것입니다. 한 세대가 일어났다 썩고 부패하여 사라지고, 또 한 세대가 변질되고 부패하여 사라지되 하나님은 불변 영존하십니다. 인간들은 정말 우주에 비해 한낱 풀잎 같은 존재인데 조그만 지구 밭에서 나온 풀(채소) 같은 인생들이 왜 그렇게 교만 거만한지 우주 넓은 줄 모르고 혼자 잘난 체하며 거만, 뻣뻣한 머리를 흔들어 대다가, 제풀에 썩기는 왜 그렇게 잘 썩는지 금방 변질되고 타락해서 죽어 사라집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오신, 변질이 무엇인지 모르시는, 영원히 거룩하신 예수님, 큰 소금 되신 분께서는 강도가 됐든, 창녀가 됐든 채소 같은 인생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나는 그대를 사랑하노라.” 하시며 한번 어루만지시면 그 자리에서 변화되어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잘났다고 뻣뻣하게 교만 방자하던 인생들이 금방 그 소금 되신 분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온유, 겸손하고 부드러운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드디어 그들은 하늘의 하나님께서 데려가셔서 불사의 새 세상에 썩지 않는 사람들이 되어 영원히 영생하는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 하늘에서 오신 큰 소금 되신 예수께서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황금이라.”고 하지 않으시고, “너희는 세상의 보물이라.”고 하지 않으시고,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소금의 짠맛을 잃지 말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처럼 사랑의 소금이 되어 하루살이 같은 인생들, 몇 평 되지 않는 지구 밭고랑에서 나왔으면서 잘났다고 흔들어 대는 인생들, 금방 변질되고 타락하여 죽을 채소 같은 인생들을 온유하고 겸손한 자로 변화시켜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버림받은 맛 잃은 소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 5:13).
만약 소금이 짠맛을 잃는다면 어디에 쓸 수 있을까요? 그것을 밭의 거름으로 쓸 수 있을까요? 아니면 흙처럼 물에 개어 벽을 바를 수 있을까요? 아니면 누가 먹어 주는 자가 있을까요? 도무지 쓸 데가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들은 사람에게 불필요한 것은 하나도 없이 다 요긴한 것들뿐입니다. 우리가 제일 흔하다는 흙, 이 흙이 없으면 모두가 살 수 없습니다. 흙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제일 귀중한 것입니다. 또한 모래가 없으면 집도, 아파트도 짓지 못하고 단층집이나 흙으로 발라 놓고 살아야 됩니다. 자갈이 없다면 또 살 수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사람들이 싫어하는 잡초, 이 잡초가 있어야 온 세상 둑들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심지어 동물이나 사람의 분뇨도 이 세상에서 식물들에게 가장 귀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무엇이 되었든 이 지구상에 필요치 않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오직 한 가지, 이 세상 어디에도 필요 없는 존재는 맛 잃은 소금뿐입니다. 이것은 도대체 어디에 버리려고 해도 오히려 버리는 땅이 아깝습니다. 맛 잃은 소금이 만약 산더미같이 몇 만 톤이 있다면 그것을 어디에다 버리겠습니까? “그 소금을 우리 나라에 주시오.” 할 나라가 없고, “우리 밭에 버리시오.” 할 사람도 없습니다. 그저 서로 싫다고, 필요 없다고 배척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제자라는 사람들이, 예수님이 가지신 짭짤한 하늘의 불변의 사랑, 곧 하늘 아버지의 사랑을 소유치 않는다면 아무 쓸데없는 존재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그 당시 하나님의 정통 교회라고 자처하며 몇 백만 명씩 모여 집회를 하던 황금으로 입힌 예루살렘 교회가 하늘의 거룩한 사랑으로 온 세상을 변화시켜서 구원하는 교회가 됐어야 했는데, 그들이 맛 잃은 소금이 되어서 백성의 신앙심을 이용하여 교묘하게 재물이나 착취하여 치부하는 것을 보시고 “너희가 기도하는 내 집을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눅 19:46).”라고 호통 치시며 하늘의 화(禍), 곧 멸망을 선언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사랑을 소유치 않은 지상의 종교들은 멸망하여도 묻어 줄 땅도 아까운 것입니다. 우리 한국은 무덤이 전 국토의 천분의 일을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계속 나간다면 이 지구 좁은 땅은 무덤에 덮여서 사람이 경작할 땅도, 집 짓고 살 터도 좁아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맛 잃은 소금과 같은, 사랑 없는 종교들은 무덤처럼 지구 땅만 차지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부르는 종교계들이 맛 잃은 소금, 모래와 같이 되었기에 남의 눈을 그토록 쓰라리게 만들고, 또 가까이하면 남에게 상처만 주고, 그들이 주는 것은 영혼이 먹을 수 있는 소금이 아닌 모래, 돌가루뿐인 것입니다. 그래서 소금 맛(영원한 진리와 사랑)이 없는 종교들(儒, 佛, 仙)은 고금을 막론하고 버릴 데도 없고 쓸 데도 없는, 온 세상 인생들을 속임수로 끌고 다니며 재물과 마음만 다 빼앗고 죽이는 거짓 미혹의 영들의 연극 무대로 멸망의 지옥문만 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계 11:18)이라고 멸망을 선고하셨습니다. 앞 세대에 오셨던 예수께서도 그 당시 몇 백만의 정통 교회라는 타락한 예루살렘 교단, 가짜 소금들을 다 버리시고 제자 열둘을 새로 택하사 모아 놓으시고는 “너희가 내 교회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노니 너희는 부디 세상의 소금이 되어 세상을 변화시키라. 내가 세상의 소금이 되어 너희를 썩지 않을 인간으로 변화시킨 것같이 너희도 소금이 되어 세상을 거룩하게 변화시키라.”고 간곡히 부탁하셨던 것입니다.
소금의 나이를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는 이미 있는 바다와 땅을 갈라서 정돈하셨을 뿐, 그때 바다를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태고 전부터 그 바닷물 속에 있던 소금은 그 나이가 얼마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소금은 세상에서 가장 큰 바다 나라에서 나온 가장 나이 많은 어른이지만 그런 나이 많고 점잖은 소금이 이제 갓 나와서 며칠 되지도 않은 채소들, 30일 된 채소, 60일 된 채소, 자기에 비하면 겨우 눈 깜짝할 생명도 아닌 그 하루살이 채소들을 위해서 자신을 다 희생하여 내줌으로 자신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거룩한 무아의 소금 친구는 참으로 거룩한 사랑의 소유자입니다.
예수님은 영원 전부터 스스로 계신 하나님으로 그 큰 하늘 나라 우주의 주인이시며 나이가 얼마인지 알 수 없는, 낳은 자가 없으신 자존자이신 분께서 이 조그마한 땅에 오셔서 하루살이 같은 인생들, 풀같이 채소같이 교만 방자하게 너풀거리며 혼자 잘났다고 하는 어리석은 인생들을 위해서 자기의 생명을 아낌없이 희생해 주신 예수님은 참으로 하늘에서 오신 무아의 큰 소금이십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시에 타락한 종교들, 땅에 묻으려 해도 땅이 아까운 맛 잃은 소금이 돼 버린 유대 거짓 종교 단체들처럼 되지 말고, 자기처럼 세상의 소금이 되어 달라고 간곡히 당부하셨던 것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예수님께서는 오늘날도 똑같이 우리에게 호소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너희는 저 세상 맛 잃고 썩어 부패한 종교계같이 되지 말고 이 세대의 마지막 나의 소금들이 되어 풀 같은 세상 인생들을 영원히 썩지 않을 인생들로 변화시켜 구원하라.”고 지상 최대의 사명인 마지막 부탁을 하고 계십니다.
소금이 되어 남을 구원하려는 사람은 자신이 먼저 거룩한 소금 되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세상에 채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자는 오직 소금뿐인 것처럼 짭짤한 하늘 친아버지의 사랑을 소유한 자만이 세상 인생들을 변화시켜 구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맛 잃은 소금처럼 하늘의 진리와 사랑이 없는 종교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마 5:13), 즉 멸망될 뿐입니다. 여기에 불사의 영생에 들어가느냐, 아니면 영원한 멸망에 들어가느냐 하는 각인의 운명이 달려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소금이 되기로 마음속으로 결심만 한다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책임 지시고 우주에 거룩한 소금으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거룩한 사랑의 소금 맛 대신 자아의 이기심 욕심만 가득 끌어안고 있다면, 이제 곧 멸망되어 사람에게 밟히는 인간 쓰레기가 될 것입니다. 더 이상 이 우주 안에서 필요 없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귀한 소금이 된 자들은 이 세상 하루살이 풀 같은 인생, 채소 같은 인생들을 변화시킨 후에 자신은 아낌없이 희생한 후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참제자의 일생입니다.
 
우주의 보배 소금
남을 위해 희생한 소금은 영원히 사라지는 것일까? 그렇지 않습니다. 채소의 몸 속 깊은 줄기 속, 뼛속까지 자기의 사랑, 곧 자기 생명을 다 바쳐서 채소를 변화시킨 소금은 채소 안에 들어가 여전히 살아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먹어서 피가 되어도 사람의 피 속에 소금은 여전히 살아서 돌아가는 것입니다.
소금이 없으면 사람이든, 채소든 살 수가 없습니다. 소금이 없이는 사람의 몸 속의 피는 만들어질 수 없고, 또 모든 식물들과 동물들이 양의 다소만 차이가 있을 뿐 모두가 소금을 빨아먹고 삽니다. 사람들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황금, 보석보다도 훨씬 귀하고 없어서는 안 될 소금, 모든 생명체들의 생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 아버지의 짭짤한 사랑의 맛, 소금 맛을 가진 사람들은 이 세상과 우주 만국에서 다 환영을 합니다. 이 지구는 그 짭짤한 하나님의 사랑의 맛을 지니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서 존재하여 왔고, 우주 또한 영원히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채소는 한 무더기, 한 짐이 있을지라도 소금은 몇 주먹만 있으면 그것들을 모두 녹여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처럼 비록 적은 무리의 제자들이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지닌 소금 덩어리만 된다면 이 넓고 큰 세상을 거뜬히 변화시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맛 잃은 소금은 누가 가마니에 담아 보관할 사람도, 창고에 넣어 둘 사람도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랑이 없는 종교나 인간은 이 세상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그리고 하늘과 땅에 아무 쓸데없는 존재들입니다. 이런 불쌍한 사람이 되지 말고 하늘의 큰 소금 덩이 되신 예수님처럼 사랑이 전체가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소금, 오직 거룩한 무아의 사랑만이 필요합니다.
 
모든 생애에 소금을 치라
「무릇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소제물에는 모두 누룩을 넣지 말지니 너희가 누룩이나 꿀을 여호와께 화제로 드려 사르지 못할지니라」(레 2:11).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레 2:13).
이것은 우리 하나님께서 제사 지내는 방법과 기꺼이 받아 주실 제물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제사상(床)에 떡이나 제물을 올릴 때에 맛을 내기 위하여 부풀리게 하는 누룩이나 고물을 묻히지 말고 꿀도 넣지 말고, 오직 소금만을 치라는 분부이셨습니다. 떡에다가 소금을 둥글둥글 묻혀 가지고 한 접시 놓았다면 누가 먹으려고 하겠는가?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제사상을 요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말씀을 하시지만 그 말씀은 곧 우리의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성서에 보면 우리 몸을 산 제물로 바치라는 말씀이 있는데, 그것은 생애를 통째로 헌신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사 받으실 제물은 송아지도, 양도, 떡도 아니고 우리의 몸과 마음인데 하나님 앞에 생애로 제사 드릴 때, 결코 누룩을 쓰지 말고 꿀을 바르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말씀의 뜻은 인간의 마음을 부패시키는 죄의 누룩과 꿀 발림, 설탕 발림한 입술의 말만 가지고 나오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번지르르하게 말만 잘하는지 모릅니다. 속은 죄의 누룩에 떠 있으면서 꿀 발림한 입술로만 번지르르하게 말을 잘합니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께 나아갈 사람은 마음속의 죄악의 누룩과 꿀 발림한 입술을 버리고 영원히 변질되지 않는 하나님 사랑의 소금 맛으로 뭉쳐진 마음과 생애로 헌신해야 합니다.
이제는 구속 사업을 마치고 새 세상으로 갈 때가 되었기 때문에 필요 없는 인생들은 다 버리고 새 세상에 꼭 필요한 자녀들만 거둬들이는, 즉 쭉정이는 불태우고 알곡은 담아서 옮기는 마지막 지구 추수 작업을 할 때가 된 것입니다. 이 타작 마당에서 살아 남을 알곡은 영원히 썩지 않고 변질될 수 없는 소금이 된 사람들뿐입니다. 그래서 소금이 되라고 하신 것은 채소같이 변질되어 타락지 않고 영원토록 타락할 수 없는 불사의 신(神)들이 되어 달라는 부탁입니다.
“만약 너희가 소금이 되지 않고 맛 잃은 소금이 된다면, 즉 시대마다 썩고 타락한 종교계처럼 또다시 너희도 타락하여 맛 잃은 소금이 된다면 이 세대 또한 저들같이 인간의 발에 밟히는 재가 될 것이라.”는 말씀이십니다. 비록 예수님의 제자일지라도 소금이 되지 않는 자들은 악인과 동일하게 사람에게 밟히는 재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소금이 된 제자들은 영원토록 새 세상에서 친아빠와 한 집에 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주에 없어서는 안 될 가장 귀한 보배로 영광과 은총을 독차지하고 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는 죄악의 누룩을 뒤집어쓰고 나가지 말고, 꿀 발림이나 설탕 발림한 입술을 가지고 나가지 말고, 소금같이 안팎이 똑같은 짭짤한 하늘 아버지의 사랑과 아들의 사랑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소금은 작은 덩어리든, 바위만큼 큰 덩어리든 겉과 속이 똑같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소금은 결코 없어지지 않고 멸망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거룩한 몸과 영원한 나이를 가지신 분으로서 채소 같은 인생들을 위해서 일찍이 자기의 생명을 희생하셨지만, 그분은 오늘도 여전히 살아서 존재하고 계십니다. 소금은 뱃속에 들어가도 존재하고, 오줌으로 나가도 여전히 소금으로 남습니다. 다시 말해서 “너희는 소금이 되라.”는 것은 영원한 불사의 생명을 소유한 자가 되라는 부탁인 것입니다. 다른 것은 물에 넣어도 죽고 불에 태워도 사라지고 누구에게 먹힘으로 영원히 사라지지만, 소금은 물에 타도 있고 불에 타도 남고 먹혀도 있고 버려도 있고, 소금은 없앨 수 없는 영원한 존재입니다. 우리도 영원한 불사불멸의 영존하는 소금이 되도록 하십시다.
 
소금 언약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모든 성물은 내가 영영한 응식으로 너와 네 자녀에게 주노니 이는 여호와 앞에 너와 네 후손에게 변하지 않는 소금 언약이니라」(민 18:19).
“너희는 나에게 제사를 드릴 때에 죄악의 누룩을 쓰고 나오지 말고 꿀 발림이나 설탕 발림의 입술로 나오지 말고 안과 밖이 똑같은 사람으로 나아오라. 나는 그런 생애의 제물을 원한다. 이는 여호와 앞에 네 자손 만대에 변치 않는 소금 언약이니라.” 이 소금 언약은 영원히 소금이 된 사람만 불사의 나라로 옮기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자신이 먼저 변치 않는 소금이 되어 큰 소금으로 오신 예수님처럼 세상을 변화시키면서 영원히 변질이나 타락이 무엇인지 모르는 소금이 되기로 결심하고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사람들만 하나님께서 제물로 받으시고 새 세상으로 옮기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마지막 하나님의 자녀로서 ‘내가 소금이 되지 않고는 살지 않으리라.’는 굳은 결심을 가지고 친아빠와 주님께 나아가 소금 언약을 맺어야 할 것입니다. 소금이 되지 않으면 맛 잃은 소금처럼 쓰레기 같은 자가 될 것입니다. 유다는 소금이 되는 데 실패한 제자로서 이천 년 동안이나 사람들에게 밟히는 자가 되었습니다. 열한 제자는 소금이 되어 세상을 위해서 희생함으로 불사 영생을 얻었지만, 유다만이 녹을 줄 모르는 모래가 되어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살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유다같이 소금 되는 데 실패하지 말고, 열한 제자같이 소금이 되어 세상을 위해 산화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신분이 하늘의 황태자, 하늘의 황공주이지만 ‘내가 저 불쌍한 채소 같은 인생들을 위해서 내 자신을 바치고 세상 어디를 가든 친아빠의 짭짤한 소금 덩어리가 되어 사라지리라.’고 결심하도록 하십시오. 그렇게 소금 언약을 지키는 자들만이 영원한 새 세상의 주인이 되어 약속한 만 가지 축복들을 받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소금 언약으로 이스라엘 나라를 영원히 다윗과 그 자손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알 것이 아니냐」(대하 13:5).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 참하나님께서는 그 아들 다윗(예수님)과 소금 언약을 지키는 자들에게 불사불멸의 나라를 영원히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지구엔 최후로 소금 덩어리만 살아 남게 됩니다. 소금들만 모인 지구에는 죄악의 박테리아나 부도덕의 곰팡이가 생겨날 수 없으므로 부패나 타락이 영원히 없는, 새 세상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원토록 이 지구는 사망이나 저주가 다시는 있을 수 없는, 불사 영생의 행복한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한 짐 되는 채소라도 한 그릇 소금만 뿌리면 거기에는 곰팡이나 박테리아가 살지 못하거늘, 소금 덩어리들이 이 지구를 꽉 채워 살게 되니 이 지구에는 영영토록 죄의 곰팡이가 생기거나 부도덕의 박테리아가 서식할 수가 없는, 영원한 새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계획은 실현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우리 자신의 나약함을 생각할 때 ‘나도 이렇게 변질되기 쉬운 인간이고 내 결심은 썩은 새끼줄처럼 힘없이 잘 끊어지는데, 나 같은 인간이 만약 새 세상에 들어간다면 거기서 또 죄짓고 타락하지 않을까?’ 염려될지 모르지만 그 점은 조금도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완전합니다. 인생이 자기 자신을 바라볼 때에는 힘없고 나약하지만 하나님은 전능하신 창조주, 능력의 아빠시므로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마 19:26). 하나님께서 책임 지시고 완전한 소금으로 재창조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소금 될 것은 조금도 걱정하지 말고 다만 “오, 하나님! 저는 꼭 소금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저를 꼭 소금으로 만들어 주십시오.”라고 기도만 하십시오. 그러면 그 결심을 보시고 큰 소금 덩어리로, 완전한 소금 덩어리로, 영원히 변치 않을 친아빠 사랑 덩어리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현재의 의지가 약한 자신을 바라보지 말고 완전 무결하게 창조해 내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아빠의 손에 맡기면 영원 불변의 창조물 소금 덩이, 사랑 덩이로 새롭게 창조해 주실 것입니다.
 
새 그릇에 담은 소금
「그 성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고하되 우리 주께서 보시는 바와 같이 이 성읍의 터는 아름다우나 물이 좋지 못하므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나이다 엘리사가 가로되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내게로 가져 오라 하매 곧 가져온지라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 던지며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 좇아 다시는 죽음이나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짐이 없을지니라 하셨느니라」(왕하 2:19-21).
성읍의 터는 아름다운데 좋지 못한 독물이 나와서 그 물을 빨아먹은 채소나 과일 나무들이 때가 되기 전에 다 낙과가 되고 시들어 죽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사람이 한번도 쓰지 않은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가져오라 하여 소금을 샘 근원에 뿌리니 거기서 단물 생수가 나오더라.” 이것은 마지막 날 이 땅에서 다시 이루어질 예언인데, 오늘날 그 말씀이 우리 가운데서 이미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늘 친아빠를 알기 전에는 인간의 몸, 즉 터는 근사하고 외모, 얼굴도 좋았으나 입에서 언행의 독한 물(악담과 저주)이 나와 자신도 망치고 가족과 이웃들의 연한 마음 가지들도 망쳐 놓아 사랑의 열매도 맺지 못하게 하고 화평의 꽃도 피지 못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 가지고 온 새 그릇에 담긴 친아빠의 사랑의 소금을 뿌림 받으니 우리 입, 독한 샘 근원이 바뀌어 입에서 사랑의 진리 생명수가 흘러나와 자신과 가족 모두가 사랑의 열매, 행복의 열매를 맺게 하고, 이웃도 화평의 열매를 맺게 해주는 생명수의 근원이 되었더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더럽혀진 헌 마음 그릇을 모두 다 버리고 새 마음 그릇, 새 물 근원이 되어 하늘에서 온 거룩한 사랑의 소금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내 가정과 온 세상 인간 나무들의 마음 가지에 사랑과 화평의 꽃을 피우게 해주고 신성(신의 성품)의 열매를 맺히게 하는, 온 세상이 다 먹고 영생할 수 있는 생수의 근원들이 될 것입니다.
 
만약 소금이 없다면
「싱거운 것이 소금 없이 먹히겠느냐」(욥 6:6). 이 말씀은 “음식에 소금이 빠졌다면 너희들이 먹을 수 있겠느냐?”고 우리에게 질문하시는 말씀입니다.
필자가 어떤 곳에 가서 산채 무침을 맛있게 먹었었습니다. 그 산채 무침은 천연 식품인데, 그러나 아무리 비료도 주지 않고 오염되지 않은 산채 무침이라 할지라도 만약 요리사가 소금을 넣지 않았다면 무슨 맛이 있겠는가? 그것은 도대체 퇴비를 씹고 있는지, 낙엽을 씹고 있는지 알 수가 없을 것입니다. 오직 소금이 음식을 맛있게 만들어 준 것입니다. 또 맛있는 국을 끓였는데 만일 거기에 소금을 안 넣었다면 어떻겠는가? 그것은 게심심하고 아무 맛이 없어 먹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것 또한 소금이 들어감으로 맛있는 국이 되는 것입니다. 한국 명절, 정월 대보름날에 찹쌀 오곡밥이 훨씬 맛있는 것은 오곡밥에 소금을 넣었기 때문입니다. 하여튼 무엇이든지 소금이 들어가지 않으면 먹을 수가 없고, 먹어도 맛이 없습니다. 그런데 소금이 들어가면 맛있다고 먹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너희들, 음식 먹어 봤지? 열 가지든지 백 가지든지 그 음식에 소금이 빠지면 먹겠더냐? 나도 짭짤한 사랑이 빠진 집회, 사랑이 빠진 봉사, 사랑이 빠진 예배는 받을 수가 없단다.”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중이 모여 집회를 하든지, 친구와 대화를 하든지 교제를 하든지, 약혼자와 교제를 하든지, 부모 자식간에 대화를 하든지, 이웃 사람과 모임을 갖든지 짭짤한 하늘 아버지의 사랑을 가지고 해야 합니다. 사랑의 소금으로 교제하고, 소금으로 대화, 소금으로 연애를 하면 그것은 타락한 세상의 속된 사랑이 아니요, 거룩한 사랑이므로 하늘 아빠께서 타락 전 아담과 이브를 축복해 주셨던 것같이 더욱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어떤 음식을 요리해 먹을지라도 절대로 소금이 빠지지 않듯이 하늘 아버지 앞에서 우리의 전생애가 소금을 골고루 친 것처럼 만사에 친아빠의 사랑이 빠지지 않도록 생애를 살아야 합니다. 그 동안은 친구를 만나면 쓸데없는 남의 험담이나 엉뚱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했지만 이제부터는 어디에 가서든지, 무슨 대화를 하든지, 누구를 사귀든지 하늘 친아버지의 짭짤한 사랑으로 대화하도록 하십시오. 소금은 채소에 뿌리든지, 국에 뿌리든지, 나물에 뿌리든지, 어디에 뿌리든지 짭짤한 맛만 냅니다. 우리도 이제부터는 하늘 소금이 되었으니 우리 아빠께서 어디에 던지실지라도 그곳에서 친아빠의 짭짤한 사랑의 맛만 내야 합니다. 소금은 절대로 단맛도, 신맛도 내지 못하고 오직 짠맛만 냅니다. 그리고 그 짠맛이 자기도 살리고 남도 살리는 방부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짠맛밖에 못 내는 소금이 될 때에 세상의 부패와 타락을 막게 되고, 나아가서는 죄악 덩이 지구를 거뜬히 새 세상으로 만드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될 때에 우주에서 가장 귀한, 친아빠의 보배로운 아들과 딸이 되는 것입니다. 곧 새 세상, 새 우주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왕이 신하들을 불러 놓고 “그대들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이오? 무엇이든지 말하는 대로 짐이 매일 대주겠소.”라고 했습니다. 신하들은 모두 좋아하면서, “저는 곰탕이 제일 좋습니다.” “저는 불고기가 좋습니다.” “저는 햄버거, 샌드위치가 제일 좋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나는 빵과 도넛만 계속 먹겠습니다.”라고 주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한 신하는 가만히 앉아 있다가 “저는 소금을 주십시오.” 하므로 임금이 의아해서 “아니, 소금을 달라니, 어떻게 하려고 소금을 요구하오?” 물으니 “예, 음식 중에 소금이 안 들어가는 음식이 어디 있습니까? 저는 다 먹을 것입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아하는 음식이라도 그 한 가지만 먹으면 지겨워서 계속 먹을 수 없습니다. 그 신하는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소금이 된다면 만인이 다 우리를 좋아서 따를 것입니다. 소금이 되면 만인이 우러러보는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며, 이 우주 어디고 간에 없어서는 안 될 가장 귀한 보배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소금이 되도록 합시다.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골 4:6).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늘의 사랑을 섞어서 말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 상한 영혼들에게 마땅히 치유가 되는 생명의 말씀이 네 입술에서 나가게 될 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그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마 10:19,20). 하나님께서는 매일 남의 험담이나 하고 세상의 속된 얘기나 하고, 가증스런 일만 하는 사람에게는 그때마다 필요한 생명수의 말씀을 주시지 않습니다. 오직 입에 하늘의 짭짤한 사랑의 맛을 가진 그 사람에게만 상한 영혼들을 싸매고 치료가 될 진리의 양약을 주시고, 지친 인생들에게 힘과 양식이 되는 생명의 말씀들을 필요할 때마다 넘치게 대주시는 것입니다.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막 9:50).
이 말씀은 “너와 싸운 사람에게 소금 한 줌을 주머니에 넣고 가서 화목하라.”는 말씀이신데, 만약 이전에 싸워서 원수 맺은 사람에게 진짜 소금 한 주먹을 갖다 주면서 사과한다면 그것은 상대방이 볼 때에 조롱하는 것 같아서 더 화가 날 일이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먹는 소금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너희는 하늘 아버지의 짭짤한 사랑을 마음에 담고 가서 싸운 형제와 화목하라. 그러면 어떤 유감도 녹아질 것이다.”라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모든 하늘의 말씀들은 깨달은 사람만이 모든 일에 형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고는 아무것도 깨닫거나 이해할 수도 없고, 성서를 들고 다니는 것조차 하늘에서 보시기에 역겨운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어떤 형제, 어떤 친척, 어떤 이웃, 어떤 나라와 다툰 후에라도 짭짤한 하늘 친아빠의 사랑의 소금을 마음에 담고 간다면 누구든지 다 용서하고 화목하여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너희는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그리고 “부정한 곳에 가서는 소금을 뿌리라. 그러면 성결하게 되리라.”고 했습니다. 소금이 소독약처럼 부정한 곳에 뿌리면 성결하여진다고 하시는 것은 어떤 부정한 죄인도 짭짤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 다 성결한 사람으로 변화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우리 자신이 하늘 아빠의 사랑을 가진 짭짤한 소금 덩어리 자체가 될 때에 우리 자신은 얼마나 거룩한 자가 되겠는가!
그리고 어떤 사람은 남을 흉보는 말로 “저 사람은 20년이나 신앙을 했는데 저 모양 저 꼴이야. 아직도 저렇게 교만해 가지고 잘난 체하고 다녀. 우리 남편은 아직도 저 모양이야. 우리 아내는 저 모양 저 꼴이야.” 하며 흉을 보지만 그것은 바로 그 흉보는 사람 자신이 소금이 되지 못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자신이 진작 소금이 되었더라면 이웃이나 자신의 가족들이 벌써 절여져서 온유, 겸손한 사람들로 변화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책임은 흉보는 사람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느 형제가 아직 겸손하지 못하고 교만하여 뻣뻣한 채소로 너풀거리고 다닌다면 ‘내가 아직도 소금이 되지 못해서 저렇게 되었으니 나를 용서해 주시라.’고 뉘우치고 우리 자신이 당장 소금이 되어서 형제와 가족을 변화시키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소금이 되어야만 하늘 아버지께서 함께하시고, 아드님이 함께하십니다. 그런 사람은 우주 어디를 가든지 사랑을 받게 되고 만인이 좋아하는 가장 귀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히 썩지도 않고 변질되지도 않고, 또한 원수가 죽인다 하여도 죽을 수도 없는 불사불멸의 신이 되는 것입니다. 소금은 영원히 영존하는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온 세상이 다 맛 잃은 소금이 되었으니 너 하나만이라도 소금이 되어라. 만약 너까지 소금이 되지 않는다면 이 세상은 살릴 자가 없다. 이 세상도 망하고 너도 망하여 남에게 밟히는 자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너 자신도 살고 온 세상을 살리기 위해서 너는 꼭 소금이 되어라. 꼭 소금이 되어라!”
 

<詩> 참道의 경지
 
참道의 경지는
자신은 영원히 죽어
사라지는 편을 택하여
조용히 사라지면서
 
불쌍한 인류를 위하여는
長生不死의 樂園에
꼭 들어가 살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숨지면서
탄원 기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면
아무 말이 없는 것이다
이것이 참道의 경지다
 
 
 
거짓 道의 경지
 
너도 살고 나도 살자
너도 영생, 나도 영생하자 하는 자들은
욕심쟁이 산적들이
값진 보물들 탈취해 놓고
 
자기 욕심을 마음껏 채우기 위해
뜨더귀판을 벌이는
협잡꾼들의 모습이라
이는 참道의 경지를 걷는 자들이 아니다
 
이들은 자기 몫이 돌아오지 않거나
자기 욕심의 만족이 채워지지 아니할 때는 
당장 숨었던 악마의 근성이 폭발하여 
평소 형제라고 불러 오던 옆 사람을 해치고 
하나님께 달려들 가인과 같은 자들이다
 
참道의 경지는 
자기의 유익이나 자기의 삶에 대하여는 
전혀 생각지 아니하는 것이다


 

ps:대산출판사 석선선생님 저 새 세상의 주인들은 www.doalnara.com에서 만나실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