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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에 있어서

문제사병이 자랑사병이 되기까지!

글|맹일만

우리 시대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시는 어떨지 모르지만 시골에 사는 사람이라면 아버님은 술에 찌들어 있으시고 어머님이 죽어라 일을 하시는 풍습일 것이다. (이 말에 공감하신다면 당신은 시골에서 사셨던 분이신 것 같네요.) 그래서 우리 나이 또래 사람들의 대부분은 아버지란 단어가 싫을 것이다. 엄하시고 무섭고 가까이 가기 힘들고…. 그러나 반대로 어머님은 좋았다. 보고 싶고 그립고 존경하고 사랑한다. 
어린 시절 아버님의 술 때문이었는지 어머님은 자식들만큼은 술을 못 먹게 하고 싶으셨다. 그래서 생각해 내신 것이 교회에 가면 술 안 먹는다고 해서 우리는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우리 선생님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일요일에 교회를 열심히 다녔다. 아버님이 심하게 반대는 안 하셨기에 (일요일에 일 시키실 때는 가끔씩 혼났지만) 교회에서 개근상을 매년 탔다. 이런 신앙으로 난 스무 살까지 대한 예수교 장로회란 곳에서 아버님 돌아가실 때만 빼고 결석 없이 교회를 나갔다.
그러다가 우리 선생님을 만나서 진짜 주일은 일요일이 아닌 토요일, 안식일인 것을 알게 되었다.
다른 사연을 쓰면 길어질 것 같으니 오늘은 내가 선생님을 만나서 진짜 주일인 토요일을 안식일로 알고 나서 어떻게 안식일을 지켰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자세히 말하자면 토요일이 진짜 주일인 줄 아시는 분들에게 조그마한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 이 글을 쓴다.)
군대를 갔다. 논산에 11월 군번이 되어 추울 때 들어갔다. 내가 지켰던 주일이 아닌 토요일이기 때문에 나도 각오를 하고 입대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첫 안식일 토요일부터 쉽지 않았다. 내무반장으로부터 시작해서 어느 정도 맞기도 했지만 한국은 다행히 신앙의 자유가 있어서 안식일을 지키기로 각오하니까 큰 사건 없이 혼자 어디도 못 나가고 조교들 방에서 내가 가지고 간 성경을 읽으면서 안식일을 지킬 수가 있었다.
논산에서 첫 안식일을 지키고(논산은 의외로 쉬웠다.) 나서 두 번째 안식일은 훈련소 안에 있는 안식교 교회를 갔었다. (훈련소 안에는 천주교, 불교, 기독교, 안식교 교회가 있어서 일요일마다 모두 종교생활을 한다. 종교생활을 위해서라기보다 내무반에서 있으면 조교가 괴롭히고 또 종교행사에 참여하면 빵이랑 우유를 주기 때문에 그런 이유로 대부분 다 종교행사에 참여한다.)
그런데 금요일 저녁부터 안식일을 제대로 지키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거기에 오는 안식교인들은 토요일 오후에나 겨우 교회에 나오는 것이 아닌가? 나는 선생님께 안식일에 대해 배울 때 성경에 분명히 금요일 해 질 때부터 토요일 해 지는 시간까지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배웠는데 안식교에서는 그렇게 안 가르치는지 아니면 가르치는데 환난이 두려워서인지 그곳에 있는 안식교인들은 안식일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모습을 보았다.
후반기 교육을 받으러 광주로 갔다. 나의 주특기는 기갑이었다. 기갑은 군기가 장난이 아니다. 위장복에 권총을 차고 베레모를 쓰고 다닌단다. 동기들이 걱정을 해준다. 거기서 안식일을 제대로 지킬 것인지 무척 걱정을 해준다. 그러나 나는 하늘의 법이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정하셨기에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광주로 내려갔다.
 
광주에서 첫 안식일을 지키는데 소대장, 중대장이 말해도 내가 고집을 안 꺾으니까 대대장이 부르신다. 처음에는 점잖게 이야기로 타이르신다. “안식일을 지키면 대대장이 영창을 보낸다. 그러면 너는 빨간 줄이 들어가서 일생을 망치느니 남한산성(육군교도소)에 가면 병신 되어 나오느니...” 별스런 소리를 다 한다. 나는 진짜 육군교도소가 남한산성에 있는 줄 알았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장호원으로 옮겼단다.
이래도 타협 않고 저래도 타협을 안 하니 답을 월요일에 주겠단다. 당장 내일이 금요일 저녁인데 말이다. 내일부터 지키게 해달라고 고집을 피우자 거의 쫓겨나다시피 해서 대대장실에서 나왔다. 드디어 후반기 교육에서 첫 안식일을 지키는 금요일 해 지는 시간이 되었다. 그날 저녁부터 난 꼼짝을 안 했다. 왜냐면 안식일을 평안히, 거룩히 지켜야 하기 때문에 그날부터 성경을 보면서 혼자 앉아 있었다. 점호를 취해도 그 다음 날 교육을 받으러 가도 난 꼼짝을 안 했다. 그랬더니 조교가 어이가 없는지 “대대장님이 허락을 했냐?”고 묻는다. 그러나 난 “허락을 안 받았지만 하늘의 법을 지켜야 합니다.”라고 대답을 하고 가만히 앉아서 성경만 봤더니 어이가 없는지 그냥 나간다. 내무반에는 아무도 없다. 혼자 무릎 꿇고 기도도 한다. 평안하지만 한쪽 마음에서는 두려움도 온다.
그러나 난 이미 하늘의 법, 안식일을 알았기 때문에 어떤 위험을 당해도, 아니 내가 이 법을 지키다가 죽어도 후회가 없기에 기쁨으로 그 하루를 그렇게 보냈다. 월요일에 대대장님이 부르신다. “너 같은 놈은 처음 본다. 내가 다 들었다. 허락도 안 해줬는데 안식일을 지켰다고 하기에 이제부터 후반기 교육 동안에는 마음대로 지켜도 좋다.”라는 의외의 대답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영창까지 갈 준비를 했었는데 안식일에 대해 허락을 받고 나니 다음 안식일도 나를 건드리는 자가 없다. 오히려 토요일 오후에 동료들은 내무반에서 떠들고 TV도 보고 하는데 추운 겨울이라 밖에서 안식일을 지키다가 도저히 추워서 내무반으로 들어와 혼자 성경을 보면서 안식일을 지키면 동료들이 하도 떠들고 있으니까 조교가 내무반에 들어와서 큰소리로 “야, 조용히 안 해? 일만이가 안식일 지키는데 왜 이리 떠들어?” 하면서 조용히 시켜 준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의 자대는 20사단 발칸대대이다. 내 주특기는 장갑차 조종수이다. 자대는 친구들 4명이 같이 들어갔는데 대대장실에서 먼저 면담을 해주신다. 대대장님이 이런저런 좋은 이야기를 해주신 후 “이상이다!” 하면서 내보내는데 내가 손을 들었다. “실은 제가 안식일을 지키는 신앙인입니다. 이 부대에서도 안식일을 지키게 해주신다면 다른 병사들보다 더 열심히 해서 모범군인이 되겠습니다!”라고 말씀드리니 대대장님이 2중대 중대장을 부르더니 “이 병사 안식일을 지키게 해주라.”고 하신다. 그로부터 나는 내무반에서 별로 인기 없는 병사이자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다. 한두 달 지났다.
한번은 중대장이 우리 중대 내무반장들을 부르셨다. 내가 금요일 저녁부터 아무 일도 안 하고 근무도 안 서고 훈련도 안 받으니까 다른 병사들이 나를 싫어하고 또 군인이란 명령에 죽고 사는데 명령 불복종자이니 영창을 보내려고 내무반장들을 부르셨다고 한다. 그런데 내무반장 모두 다 “일만이가 신앙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토요일을 지키지만 평상시엔 다른 병사보다 두 배 일을 합니다. 그리고 얼마나 성실한지 모릅니다. 그런 일만이를 왜 영창 보내서 빨간 줄이 가게 하십니까? 저희들이 잘 도와줄 테니 안식일을 지키게 해주십시오.”라고 대답을 했단다.
나는 몰랐는데 나중에 우리 내무반장이 와서 이야기를 해준다. 나를 안식일을 지키게 해주신 분, 석선 선생님의 가르침 ‘성실 근면’, 그리고 ‘무아가 되어 남을 위해 발이 되는 생애’대로 살려고 노력해 보니 이런 놀라운 일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더 좋아한 분은 우리 중대장이시다. 본인이 영창 보내려다가 내무반장들의 말을 듣더니 이젠 중대장이 자랑을 치면서 다니신다. 다른 중대장, 대대장에게도 자랑을 치고 다니신다. 그 당시엔 몰랐는데 본부중대에 일이 있어서 내려갔더니 내 이름표를 본 장교가 “네가 안식일을 지키는 자냐?” 하고 물으시기에 “네.” 하고 대답을 했더니 “너희 중대장이 너 안식일도 잘 지키고 생활도 잘한다고 칭찬하더라. 열심히 잘 해봐라.” 하신다.
이유인즉 우리 중대장이 사실 나를 받고 골치 아파했었다. 당연히 그럴 것이 한 명의 미꾸라지 같은 것이 있어 중대 분위기가 안 좋으면 중대장의 책임인데 생각보다 내가 적응을 잘하고 내무반장들이 다 좋아하니 결국 자기 중대 안에 문제아가 하나 있는데 지휘관이 지휘를 잘해서 중대가 아무 문제가 없이 잘 돌아가는 것이 되어 자기 위상이 올라간 격이 된 것이다.
그로부터 2년이란 시간이 흘러 나는 다른 전역 병장과 같이 병장마크를 달고 대대장께 마지막 인사를 하고 우리 대대를 나왔다.
 
내가 이 글을 쓴 이유는 이 세상은 거짓 오류에 속아서 모두 다 일요일이 주일인 줄 알고 있다. 그러나 토요일이 진짜 안식일인 줄 아시는 분들을 위해서 쓴 것이다. 하나님은 살아 계신다. 우리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보살피신다. 하늘의 법인 안식일을 지키는 자만이 구원이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 백성이라면 10월 3일 개천절을 지킨다. 그런데 대한민국 백성이라고 하면서 10월 3일 개천절을 안 지키고 다른 나라, 혹은 일본의 개천절(언제인지는 모르지만)을 지킨다면 어찌 대한민국 백성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하나님이 지키라고 말씀하신 토요일을 지켜야 한다.
그 길이 쉽지는 않다. 그러나 하늘가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 계명을 지켜야 한다. 앞으로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기로 작정하신 분들은 걱정하지 마시고 목숨을 내놓는다 생각하고 안식일을 지키시기 바란다. 하늘의 거룩함을 깨닫기도 하고 축복이 쏟아진다. 그리고 하늘의 평안이 따른다.
이제 내 나이 마흔다섯 살이지만 스무 살 때부터 지켰던 안식일을 한 번도 더럽히지 않고 잘 지키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하나님께서 그 길을 지키신다. 모두 다 이런 복을 다 같이 누리며 같이 하늘로 가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