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새해 경기도 이천 냉동창고 건설 현장에서 불이 나 마흔 명이 숨졌다. 우레탄 발포작업 중에 난 불이 냉매 같은 화학물질에 옮아 붙으면서 내뿜은 유독가스에 쓰러졌다. 희생자 중엔 잘살아보겠다는 꿈을 안고 한국에 온 중국 동포 열두 명이 있었다. 60대 중국 동포와 아들, 조카 부부까지 일가 일곱 명은 한꺼번에 변을 당했다. 중국 외교부와 후진타오 주석까지 나서 애도하고 우리 정부에 '합당한 조치'를 요구했다.
▶아침 출근길 엘리베이터에서 60대 초반 중국 동포 할머니를 마주친다. 할머니는 이웃 맞벌이 부부 집에 함께 살며 다섯 살 여자아이를 단지 안 유치원에 데려다준다. 요즘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선 중국 동포를 가사 도우미나 아이 돌보미로 두는 집을 쉽게 볼 수 있다. 법무부는 입주 가정부·보모로 일하는 '조선족 이모'가 3만명쯤 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대학 나온 보모는 없어서 못 구한다. 아이들에게 중국어도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중국 동포들은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봇물처럼 밀려와 이제 우리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일손으로 자리 잡았다. 45만명이 건설 현장과 공장, 식당뿐 아니라 농장·어장·폐기물처리장에서 일한다. 요양원에서 치매 환자를 돌보고 목욕탕에서 때를 밀며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열악한 환경과 편견 속에서도 묵묵히 땀 흘리며 우리 사회를 아래에서 떠받친다.
▶지난달 서울 노량진 상수도관 수몰 사고에서 중국 동포 세 명이 희생된 데 이어 그제 서울 방화대교 상판 붕괴 사고에서도 두 명이 목숨을 잃었다. 크고 작은 사고가 났다 하면 으레 중국 동포가 끼여 있다. 한국에 온 중국 남자 동포의 56%가 막노동을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부분 체류기간 5년짜리 '방문취업(H-2) 비자'를 받아 온다. 그 기간 안에 돈을 모으려고 가족 없이 혼자 와 쪽방에 살며 험한 일을 떠맡는다.
▶미국·일본 동포들은 본인이나 부모, 조부모 중에 한 명만 한국인이면 영주권이나 다름없는 '재외동포(F-4) 비자'를 쉽게 받을 수 있다. 중국·러시아·동유럽 동포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중국 동포가 F-4 비자를 받으려면 법인 대표나 매출 10만달러 넘는 개인사업자여야 한다. 국가 공인 기술자격증을 따도 되지만 노동판을 전전하는 처지에 기술을 배우기란 쉽지 않다. 이들이 우리 땅에서 피눈물을 흘리면 200만 중국 동포가 한국에 등을 돌리게 된다. 중국 동포 일터에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더 따스한 눈길로 보살필 일이다.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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