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중국동포 노동자들이 말하는 ‘한국에서 일한다는 것’
중국동포 허모씨(54)는 2007년 서울 땅을 처음 밟았다. 여느 중국동포처럼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부인은 숙박업소에서 청소일을, 허씨는 목수·조경일 등 가리지 않고 몸 쓰는 일을 찾았다. 하지만 일자리에서 만난 ‘우리 민족’은 허씨를 ‘우리’로 대하지 않았다.
중국에서 농사를 지을 때와 비교하면 한국에서의 돈벌이는 괜찮았다. 하지만 정작 허씨가 참기 어려운 것은 힘든 일이 아니라 자신을 무시하는 한국사람들이었다. 허씨는 “조경일을 할 때 묘목 200개의 수를 맞춰서 갖다 뒀는데, 한국인인 작업반장이 세보지도 않은 채 ‘200개가 맞느냐’며 화를 냈다”면서 “눈앞에서 다시 내가 직접 세보니 200개가 맞았고, 작업반장은 별 사과 없이 가버렸다”고 말했다. 허씨는 “한국사람들이 중국동포라고 무조건 믿지 않고 얕보는 경우가 많다”며 “같은 말을 해도 중국동포들에게 더 아프고 뾰족하게 한다”고 말했다.
서울 방화대교 남단 고가도로 상판 붕괴로 숨진 중국동포 허동길씨(51) 유가족들이 31일 서울 목동 이대병원에 마련된 빈소에서 서로 껴안은 채 슬픔을 나누고 있다. | 홍도은 기자
▲ “급여도 제멋대로 깎더니 그나마 제때 주지 않아”
“공사장 승강기 못 타게 해 짐 들고 걸어올라가기도”
국내 취업자 36만명 육박 정부, 취업실태 파악 못해
급여를 제대로 주지 않는 일도 많다고 했다. 허씨는 “170만원이라고 듣고 면접을 봤는데 중국동포라고 하니까 160만원을 받으라고 한 적도 있다. 계약서를 잘 쓰지 않고 구두로만 상여금을 준다고 했다가 귀국일자가 다가오면 모른 척해 못 받는 일도 있다”며 “중국동포라고 무시하고 급여도 제때 챙겨주지 않으면서 지시는 강압적으로 하니 중국동포들도 일할 때 짜증이 많이 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1992년 한국으로 넘어와 식당일과 가사도우미일을 해온 중국동포 유모씨(59)는 한국을 좋아한다. 한국에 온 덕분에 가족들이 잘살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자리를 구할 때는 여전히 차별을 느낀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11명의 간호사를 관리하는 수간호사였던 유씨는 당시 자신 월급의 20~30배를 벌 수 있다는 말에 한국으로 건너왔다. 유씨는 남편과 함께 한국에 정착했고, 아들을 한국 명문대학 석사까지 공부시켜 한국 대기업에 취직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유씨는 아직도 오직 중국동포라는 이유로 자신의 급여가 한국사람보다 적다고 했다. 유씨는 “20년 넘게 있으면서 집안일은 한국사람보다 잘할 수 있지만 중국동포라는 이유로 월급이 한국사람보다 30만~40만원 적다”며 “공사장에서 일하는 중국동포 남자들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1992년 한국에 온 중국동포 문모씨(49)는 과거 공사현장에서 겪은 일을 잊지 못한다. 한국사람들이 문씨에게는 승강기를 타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문씨는 “매번 공사현장에서 승강기를 타지 못하고 걸어 올라갈 때마다 비참한 생각이 들었다”며 “그 상처는 아직 마음에 남아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일하는 중국동포들은 대부분 돈벌이가 목적이기 때문에 남성들은 건설현장, 여성들은 식당 주방 취업을 선호한다. 임금이 상대적으로 세지만 내국인들은 위험하고 힘들어 기피하는 직종이다. 건설업계나 식당에서도 말이 안 통하는 동남아시아 이주노동자보다는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중국동포들을 선호한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인권보호나 안전대책은 허술하다. 박경서 인천외국인노동자센터 소장은 “사업주체들이 편안하게 일 시키려고 중국동포들을 고용해 놓고는 안전교육은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며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일 대부분을 맡고 있는 중국동포들에게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고 자신이 위험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시키는 반복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중국동포의 취업실태 파악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해 6월 조사한 ‘외국인 고용조사’ 자료에 따르면 중국동포 취업자 수는 35만7000명에 이른다. 법무부가 파악한 중국동포 취업자 9만4000명 외에 26만명이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파악되지 않는 셈이다. 곽재석 이주동포정책연구소 소장은 “업주들은 중국동포들을 싼 임금에 4대보험 등 의무 없이 고용하고 있어 신고를 하지 않고 있다”며 “동포들도 일당만 잘 받으면 된다고 생각해 신고에 소극적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중국동포들은 일반적인 고용허가제 대상 외국인 노동자들과 달리 입국 경로가 다양하고 취업 신고 기관이 나뉘어 있어 실태 파악이 어렵다”면서 “사고를 당한 중국동포들의 체류 자격이 어떤지는 파악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중국인의 한국 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선족 정체성에 대한 담론 (0) | 2013.08.08 |
---|---|
中언론 “왜 한국에서 사고만 나면 중국인 피해자가 생기는가?” (0) | 2013.08.07 |
법적으론 재외동포… 체류비자는 ‘외국인’ 취급 (0) | 2013.08.05 |
'멀고 먼' 코리안드림..중국동포 근로자의 그늘 (0) | 2013.08.04 |
2013년 7월 심양영사관 대리수속지정 대행사 명단 (0) | 2013.08.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