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꾼 신선(神仙)
이른 봄날 깊은 산속에서 나뭇짐을 지고 내려오는 한 나무꾼이 있다. 돌 징검다리를 건너 계곡 물 옆에 잠시 지게를 받쳐 놓고 굽이쳐 흐르는 차가운 골짜기 물을 한 움큼 움켜 세수를 한다.
목에 두른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나뭇짐 지게 옆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한다.
그러다 무얼 보았는지 빙그레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어느새 잎도 피기 전에 꽃망울부터 터뜨린 산동백나무가 눈에 띈 것이다. 아무 손길도 닿지 않은 산동백나무 예쁜 노란 꽃송이, 탐스럽게 많이 달린 꽃가지들은 놔두고 꽃나무 좌우, 앞뒤를 빙 돌아보면서 제일 눈에 안 띄는 구석진 밑의 작은 꽃가지 하나를 조심스레 꺾는다. 지게 앞에 돌아와 노랗게 핀 그 산동백을 나뭇단에 꽂는다. 마치 정원사가 정원에 가꾼 꽃나무에게서 별 볼일 없는 꽃가지를 전지(剪枝)해 주듯 주인 없는 꽃나무를 주인처럼 사랑한다.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깊은 산속 주인 없는 꽃나무가 자랑스럽게 피워 낸 예쁜 꽃봉오리들은 절대로 손대지 않는다.
꺾어 내면 옆가지가 더 예쁘게 돋보일 곁가지 하나 조심스럽게 꺾었을 뿐 절대로 그 꽃나무를 해치지 않는다. 그리곤 기쁨으로 산에서 내려와 작은 컵에 물 떠다 꽂아놓고 좋아한다.
이것이 내가 아는 나무꾼 신선의 모습이시다. 하얀 도포를 입고, 긴 수염을 기르고, 꼬부라진 지팡이를 짚은 도인처럼 나타나신 분이 아니다. 나와 똑같이 작업복을 으시고, 안경을 쓰시고, 옆 가르마를 탄 단정한 머리에 1남 2녀, 3남매를 거느린 평범한 가정의 가장이기도 하시다.
번듯한 학력도 없고, 특별한 경력도 없으시다. 그저 산골짜기 흘러가는 물처럼 맑고, 산새처럼 자유롭고, 깊은 산속 공기처럼 신선한 생활을 즐기실 뿐이다.
세상에 말(言)처럼 많은 것이 없는데, 나무꾼 신선에게는 들레는 말소리 하나도 없다. 다만 언제나 아빠처럼 든든하고 엄마처럼 푸근하며, 형아처럼 친근하고 누나처럼 편하다.
그러나 작은 개미 새끼 한 마리가 이웃 개미집에서 아주 작은 것을 훔쳐도 노여워하고, 지구촌 어디선가 그늘진 곳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어떤 사람이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어도 함께 가슴 아파하고, 심지어 생각으로도 남을 해롭게 하는 아주 작은 이기적 속성에 대해서도 대경실색하신다.
이런 나무꾼 신선과 나는 개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살고 있다. 개울 건너 풍겨 오는 향기가 너무 좋아서, 그리고 혼자만 그 향기를 맡을 수가 없어서 오늘도 부끄러움을 삼키고 감히 서문을 쓴다.
선생님의 가르침에 감동을 받고 변화된 삶을 사는 제자들이 체험한 경험들을 모아 보았다. 선생님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우리들끼리만 간직하기에는 너무 아까워서 가까운 이웃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서 책으로 엮어 보았다.
항상 햇빛처럼 따뜻하나 소리치지 않으시고, 바람처럼 시원하나 보이지 않게 하시고, 물처럼 깨끗케 하시나 자랑치 않으시는 선생님의 거룩한 생애에 흠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하다.
파아란 가을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고추잠자리처럼, 무한한 하늘을 맨몸으로 날아다니는 신나는 꿈을 꾼 어린아이처럼 “나, 천국을 날아 봤다.”고 큰 소리로 외쳐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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