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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존경하는 박정희편

노태우 전 대통령의 박정희 대통령 평가

각 부처 장관이나 지방행정 책임자들이 보고하고 박 대통령이 지시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나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박 대통령은 조직적이고 명석한 두뇌를 갖고 있는 데다 18년간 국가를 통치해 온 관록이 있어서인지 보고자들보다 내용을 더 깊이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부실(不實)한 보고는 용납될 수 없었다.
박 대통령의 의도를 제대로 받들고 인정을 받으려면 기본적으로 우수한 사람이 노력을 많이 해야 했다. 공무원 사회는 자연스레 엘리트 관료화하는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1960년대 초에 주도권을 잡았던 혁명주체들은 이제 2선으로 물러나고 새로운 젊은 엘리트들로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경제와 행정 분야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다만 정치 분야에서는 전혀 그렇지를 않았다. 한마디로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내가 박 대통령을 만 1년간 모시면서 보니까, 국사(國事)를 야당 책임자와 만나 진지하게 논의하는 일이 전혀 없었다. 박 대통령을 받드는 사람들도 박 대통령이 야당 당수와 만난다는 자체를 있을 수 없는 일처럼 단정하고 있었다. 야당을 국가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인식하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나 역시 야당이 박 대통령의 업적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데 대해서는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나는 박 대통령이 이 나라 발전에 온몸을 바쳐 불철주야(不撤晝夜) 노력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존경심을 갖고 있던 터였다.


 당시 박 대통령의 신념은 ‘먹지 못하는 사람, 배우지 못한 사람이 무슨 민주주의를 한단 말인가? 우선 배불리 먹고 세상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자율을 모르는 민주주의란, 말만 민주주의이지 혼란일 뿐이다. 그렇게 되면 바로 김일성이 원하는 대로 나라가 흘러가게 된다. 나라를 그 꼴로 만들어서야 되겠는가? 어느 수준까지는 다소 인권(人權)을 희생시키더라도 밀고 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권력 측근에 있는 인물들의 자세와 행동이었다. 박 대통령의 신념(信念)을 자신의 신념으로 삼아 그 신념을 관철하기 위해 대중과 야당 속에 몸을 던져 끊임없는 대화를 해야 하는데 그런 노력이 거의 없어 보였다.


 많은 측근인사들이 박 대통령 앞에서는 “각하가 아니면 이 나라를 이끌 사람이 절대로 없습니다. 각하야말로 민족의 태양이십니다. 백성은 우매하고 야당은 한결같이 비애국자입니다”라고 말하면서 야당이나 국민과의 거리를 멀리 떼어놓고 있었다. 박 대통령도 사람인 이상,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육군 소장의 계급, 또 경호실 작전차장보라는 직책으로 이런 생각들을 솔직없습말씀드릴 입장이 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박 대통령이 추구한 정책 가운데 이 새마을운동만은 당리당략(黨利黨略)이라는 차원을 떠난 온 국민의 합의였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를 정치적인 이해득실(利害得失)로 따지려는 사람들이야말로 순수성을 의심해야 한다. 박 대통령의 새마을운동에 대한 강한 집념은 순수한 애국심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