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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존경하는 박정희편

고운 손은 우리적 '고운 손' 미워한 박정희

고운 손은 우리적 '고운 손' 미워한 박정희

"우리는 일을 하여야 한다, 고운 손으로는 살 수가 없다"

 

 

 

국가(國歌)와 혁명(革命)과 나”는 혁명을 일으킨 박정희가 직접 쓴 책이다. 마흔 네 살의 나이에 쓴 책이다. 그의 카랑카랑한 육성이 그대로 들려오는 듯하다. 군사혁명을 일으키고 깡패를 소탕하고, 부정축재자를 잡아넣었을 때의 그 패기가 책의 구석구석에 묻어 나오고 있다. 젊은 혁명가 박정희는 직접 노동을 찬양하고 사치와 나태를 저주하는 시를 썼다. 그가 애정을 가지고 썼다는 책에 실린 그의 시를 읽어보자.

▲ 정인봉 ©브레이크뉴스

“땀을 흘려라
돌아가는 기계소리를 노래로 듣고……
2층 객차에 불란서 시집을 읽는 소녀야
나는 고운 네 손이 밉더라.
우리는 일을 하여야 한다.
고운 손으로는 살 수가 없다.
고운 손아, 너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만큼 못 살게 되었고 빼앗기고 살아왔다.
고운 손은 우리의 적이다.”

박정희의 시를 읽어 보면 그의 철학을 알 수 있을 것도 같다. 사회주의에 깊게 물든 사람이 쓴 시라고 볼 수밖에 없는 내용이기도 하다. 이런 시를 군사독재의 원조이며 수구골통의 원조라고 욕을 먹는 박정희가 썼다고 알아챌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이런 시는 김남주 시인이나, 접시꽃 당신을 쓴 도종환이나 노동의 새벽을 쓴 박노해가 쓴 시가 아닌가 하고 생각될 정도이다.그러나 “고운 손은 우리의 적”이라고 제목지을 수 있는 박정희의 시에서 우리는 그의 건강한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우리는 박정희가 경제개발의 과정에서 빈부격차가 늘어났다고 알고 있다. 박정희는 재벌의 힘을 빌려서 수출지상주의 정책을 하였으며 그 가운데 노동자를 착취하여 노동자 계급만 못살게 하였다고 나발을 불어내고 있다. 그렇게 허황된 이야기가 마치 진실인 것처럼 퍼져나가서 젊은 사람들은 그게 사실인 것으로 믿고 있다. 실제로 장하준 박사는 박정희는 단순한 경제발전을 한 것이 아니라 의료수준도 개선하고 문맹도 퇴치하였으며 빈부의 차별도 개선하였다고 명백하게 밝히고 있는데도 일부 먹물들에 의하여 세뇌된 젊은이들은 아직도 무작정 박정희라면 그저 노동자계급을 착취한 자본가의 앞잡이 정도라고만 알 수 있다.

그렇게 잘못된 사실이 널리 퍼지게 된 것은 무엇일까?

첫째로 박정희 자신이 변명하지 않았던 점이다. 그는 지도자가 비판세력과 말로 싸우고 스스로를 변명하는 것은 치사하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굳이 이렇다, 저렇다고 설명하지 않았다.
둘째로 그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돌연 사망하였다는 점이다. 만약에 그가 김대중 대통령이나 김영삼 대통령처럼 회고록을 쓸 시간이 있었다면 해명할 기회라도 있었을 터인데, 그는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의 총을 맞고 절명하였기 때문에 은퇴한 후에 해명할 기회가 없었다.
셋째로 박정희의 뒤를 이은 전두환 대통령이나 노태우 대통령이 군인출신 대통령이라는 것에 대한 알지 못할 열등감 때문이다. 그러니 그들은 박정희를 변명하고자 하는 의욕이 없었다. 가뜩이나 군사독재라고 비판받는데 박정희를 변명해가면서 욕을 먹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땀을 흘려라”의 시를 보면 그는 불로소득으로 사치스럽고 편하게 살아가는 세력들을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노골적으로 “고운 손”을 증오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박정희는 그 “고운 손”으로는 살 수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고운 손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만큼 못살게 되었다고 하면서 “고운 손”을 저주하고 있다. 지금 우리들이 못살게 되었고 과거에 나라마저 빼앗기고 살아온 것은 바로 “고운 손” 세력들 때문이라고 몰아붙이고 있다. 결국 박정희는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지 못한다. “고운 손은 우리의 적이다”라고 절규하고 있다.

우리는 박정희가 “가난”과 “공산주의”를 증오하는 것으로 알았다. 비판자들은 “가난 추방”은 박정희가 떳떳치 못하게 집권하였기 때문에 그걸 은폐하기 위해서 내세운 허울 좋은 구호라고 깎아내린다. 또한 “공산주의 반대”, 즉 반공을 앞세워서 인권을 탄압하였고 장기집권의 음모를 꾸몄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가난 추방은 박정희가 군사혁명을 일으킨 목적이었다. 그리고 공산주의 반대는 우리 대한민국이 살아남기 위한 기본조건이라고 확신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일하지 않는 계급, 불로소득하는 계층, 즉 “고운 손”으로 편하게 살아가는 그 집단을 증오하는 건강한 균형감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박정희는 “민주주의는 이래야 한다”는 이론에 빠지지 않았다. 서양에 유학을 다녀온 일부 지식인들과 박정희로부터 정권을 빼앗긴 민주당의 신ㆍ구파들이 아무런 비판 없이 믿어왔던 “미국ㆍ유럽식 민주주의”에 대해서 박정희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가난 추방과 공산주의 반대를 위하는 것이 대한민국에 있어서의 최대의 가치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박정희가 자신이 지은 “땀을 흘려라”라는 시에서 지적한 “고운 손 세력”, “2층 객차에 불란서 시집을 읽는 소녀”는 구체적으로 누구를 가리키는 것이었을까? 그는 지주세력을 지지기반으로 하는 한민당에 뿌리를 둔 해방 후의 정치세력을 민주주의의 탈바가지를 쓴 봉건적 수구세력으로 보았다. 그들이 바로 남들은 3등 열차도 타지 못하는데 한가로이 프랑스 시집을 읽는 “고운 손 세력”이었던 것이다. 그와 같은 세력들은 민주주의를 잘못 이해하여 “덮어놓고 미국ㆍ유럽 유학을 흉내 낸 식의 절름발이 직수입 민주주의를 맹신하는 사대주의자”라고 단정하였다. 그는 서구식 민주주의를 맹신하는 자들이야말로 조선시대 당파싸움 전문가들과 본질적으로 같은 위선적 명분론자라고 하면서 비난을 퍼부었던 것이다.

그는 “고운 손 세력”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만큼 못살게 되었고, 빼앗기고 살아왔다고 단정하였는데 그들은 나라를 망치는 “망국적 세력”이라는 것이다. 가난을 추방하고 공산주의를 몰아내기 위해서라도 “고운 손 세력”을 박멸하려 한다는 것이 그의 확신에 찬 결단이었던 것이다. 박정희는 “고운 손”을 미워하는 “거친 손”의 편에서 군사혁명을 단행하였던 것이다. 어쩌면 박정희는 우리가 뽑은 대통령 가운데 가장 노동자의 편에 섰던 대통령일 것이다. inbong1953@hanmail.net

*필자/정인봉.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