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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존경하는 박정희편

역사의 자살 박정희! "초인은 이렇게 말했다" 박정희 대통령을 국장(國葬 79.11.3.)으로 보낸지 서른 세해가 흘러 한 세대가 확실히 지나갔다. 그의 죽음의 의미를 역사 속에서 새겨 볼 때가 된 것 같다. 박정희는 돌연한 총격으로 갔지만, 그 총격의 주체는 모든 사람에게 너무도 상상 밖이었다. 총격의 주체는 그의 정적들이 아니었다. 달리고 있는 나라 위에 중압과 갈등을 몰고 와 그의 실존을 고뇌의 심연으로 밀어넣던 반대자들이 아니었다. 총격의 주체는, 인권을 고집하여 주둔군 철수까지도 위협 재료로 쓰는데 서슴치 않았던 미국의 사주를 받은 자도 아니었고, 박정희가 ‘사대주의에 골수가 절은 자들’이라고 경멸해 마지 않았던 데모크라트(민주쟁이)들도 아니었고, 유신만 아니면 대권이 제것이라고 생각해 마지 않았던 YS나 DJ의 뜻을 받은 자도 아니었고, .. 더보기
10.26사건 30년 후에 다시 보는 박정희? 10.26사건 30년 후에 다시 보는 박정희? 매우 구체적으로 정책을 지시한 박정희의 실용주의 지만원 시스템클럽 대표 박정희는 누구인가? 필자는 1974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미국 경제교과서에 “한강의 기적”이 가장 훌륭한 경제성장 모델로 예시돼 있었고, 경제학 교수가 한국의 경제성장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때 필자는 한국인임에 대해 자부심을 크게 느꼈고 낯선 이국인들을 만날 때마다 자랑스럽게 “저는 한국인입니다” 하며 악수를 청했다. 5천년 역사가 흘렀지만 당시 120여 개 나라들 중에서 가장 못살던 나라를 230여 개국 중에서 11위로 잘 사는 국가로 개조해 놓은 지도자는 박정희였고, 그가 만들어 놓은 기반 위에서 세계 최고의 고속 성장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던 지도자는 전두환이었다고 생.. 더보기
朴正熙大統領의 勤儉節約生活 朴正熙大統領의 勤儉節約生活 박정희의 헤진 혁대, 도금이 벗겨진 넥타이 핀. 1979년10월26일 저녁 경복궁 앞 국군병원에서는 이미 시체가 된 박정희를 놓고 이런 일들이 벌어 지고 있었다. 필자의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에서 인용한다. 두 정보부 경비원 유성옥과 서영준은 허리에 권총을 차고 있었다. 그 권총을 일부러 보이면서 둘러선 군의관과 위생병들에게"꼭 살려야 해요" 라고 위협조로 말했다. 정규형 대위는 이우철 일병에게 심장 마사지를 하라고 지시했다. 이일병은 환자의 가슴 위로 올라가서 두 손을 포 갠 뒤에왼쪽 가슴을 몇 차례 강하게 눌렀다. 동시에 정 대위는 수동식 인공호흡기 '암부'를 환자의 입과 코에 덮어씌워 놓고 공기주머니를 눌러 공기를 허파로 밀어보냈다. 정 대위는 심장을 자극하여 박동하.. 더보기
故 박정희 대통령의 인간적인 면모. 故 박정희 대통령의 인간적인 면모. 국립현충원 고 박정희 대통령 내외분 묘역. 1. 박정희 대통령의 편지 1978년 2월2일, 朴正熙(박정희) 대통령이 버스 안내양들의 제작하여주식회사 태흥 사장에게 보낸 감사 편지이다. 당시 버스 안내양들의 방한 코트 제작을 의뢰받은 주식회사 태흥의 權泰興(권태흥) 사장은 방한 바지를 함께 제작, 무료로 납품 했다. 이에 朴正熙(박정희) 대통령이 감사 편지를 보낸 것이다. 이 편지에서 朴(박)대통령은 버스 안내양들을 어린 나이에 가정형편이 불행하여 상급학교에 진학도 못하고 직업전선에 나와서 고된 일을 하면서 국민들에게 봉사하고 있는 이들 少女(소녀)」라고 썼다. 버스 안내양들의 입장을 이보다 더 가슴깊이 사무치게 대변하기는 어 려울 것이다. 하급 노동자의 삶을 대통령이 .. 더보기
경부고속도로 개통 태이프 끊는 박정희대통령과 이를 반대하며 드러누운 김대중대통령 DJ "경부 고속 도로는 절대로 해서는 안된다. 차 있는 사람들만 팔도 유람하고 다닐 것 아닌가? 쓸데없는 돈 낭비다" 아래 사진은 김대중전대통령이 가면을 쓰고 고속도로 공사현장에 드러누워 고속도로 건설을 반대하는 모습이다. 고속도로 건설반대 데모 선동으로 유명세를 탄 김대중은 불과 3년만에 1971 대선 후보가 되었다. DJ "정 고속도로를 건설해야 하겠다고 해도 16차선(왕복 8차선)은 절대 안된다. 뭣하러 그렇게 넓게 짓는가? 우리나라 1년 예산보다 많은 건설비를 조달할 수도 없다" 박정희 "절대로 16차선을 해야 하지만... 김대중이, 김영삼이가 너무 반대하니 할 수 없다. 경부 고속 도로를 완성하면 우리나라는 중진국이 될 수 있다" 8차선으로 하자. 박대통령이 직접 스케치한 고속도로 구상도. (.. 더보기
♣ 정주영 회장이 생전에 남긴 박 대통령 이야기 ♣ ♣ 정주영 회장이 생전에 남긴 박 대통령 이야기 ♣ 박정희 대통령-경부고속도로 개통식. 영 부인 육여사. 정주영회장. 故 정주영 회장이 생전에 남긴 박 대통령 이야기 입니다. 내가 경부 고속도로 공사때,박정희 대통령하고 얘기 도중 깜빡 존 적이 있어요. 박 대통령이란 분이 얼마나 무섭고 위엄있는 분입니까. 근데, 그런 어른 앞에서 나 혼자 앉아 이야기를 듣다가 깜박 졸았어. 아마 내가 태어나 엿새 동안 양말을 못 갈아 신은 것이 그때가 처음일거예요. 그럴 정도로 고속도로 현장에서 날밤을 새고 그랬어요. 그때 나 뿐 아니라 당시 경부 고속도로 멤버들은 전부 양말을 벗겨보면 발가락 사이가 붙었을 정도였어. 내가 작업화를 벗어놓고 자본 기억이 별로 없어요. 하여간 그렇게 현장에서 살다가 박 대통령이 호출해서 .. 더보기
박정희 기적의 마술사 인도네시아 어느섬에 간적이 있었다. 가난한 코흘리게 아이들이 관광객에게 동냥 한푼 얻으려고 한국말로 '대한민국 짝짝짝' 하면서 동정을 사려고 따라다니는걸 보고, 우리나라의 60년대 모습을 보는것 같아, 순간적으로 그아이들의 장래가 답답하였다. 가난을 해결하는 유일한 길은 교육인데, 그들의 부모 또한 찢어지게 가난하니 어떻게 교육을 시키나? 그들의 인생유전이 보이는것 같아 씁씁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우리의 아이들이 다행스러웠다. 2000년 현재 , 이곳 캐나다에 한국 학생들이 영어연수를 마치 국내 학원다니듯 으례 한번씩은 하고 있고, 서울에서는 교통체증 때문에 짜증낼정도로 그 수많은 차들이 굴러 다니고, 멋진 핸드폰, 벽걸이 TV, 도대체 그많은 돈들이 어디에서 나고 누가 만들었을까? 만일 누군가 60.. 더보기
나무를 심은 박정희 나무를 심은 박정희 국민혈세로 활동비를 지급받고 있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박형규)라는 단체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흉상을 철거하며 폭력을 쓴 자에게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평가를 내렸다고 합니다. 그런 따위를 민주화운동이라고 칭찬하는 무리들이 득세하고 있는 세상이니 세상이 해괴하게 삐뚤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김대업 테이프와 돼지저금통으로 국민을 완전히 농락하는 기법으로 선거유세를 하는 분이 아니라, 성실하게 정직을 실천하며 애국을 추구하는 분이었다면, 이제 와서 “유신헌법으로 공부한 것이 부끄럽다!”고 자기부정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도 그처럼 황당한 결정을 내릴 수는 없었겠지요. 세상 돌아가는 꼴이 가슴을 답답하게 할 때면 집 근처 동산으로 .. 더보기
박정희 ‘왜’ 위대한 대통령인가-2 (pp.24-25 ) 박정희 ‘왜’ 위대한 대통령인가-2 (pp.24-25 ) 사람과 사람의 인연은 무주상보시가 맺어주는 것이었다. 박정희와 김우중을 만나게 만들었던 것이 김용하(김우중 아버지, 대구사범학교 윤리 선생. 박정희에게 민족의식을 심어주었던 은사)였듯이 빛은 사라지는 것이지만 빛의 잔상은 영원히 살아있게 만든다. 정치인은 부패했다. 그러나 박정희는 부패를 외면했다. 공(公)은 살아 있었고 사(私)는 버렸다. 박정희는 공자와 같은 성인(聖人)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성인의 경지에 있었다. 무엇이 박정희로 하여금 그렇게 만들어 놓았던 것일까? 그가 살았던 구미시 상모동의 땅에 그러한 힘이 있었다. 그 힘을 만들어냈던 것은 김형철의 무주상보시였다. 돈은 마물(魔物)이다. 사람은 돈에 취해버리면 이성을 잃어버리게 만든다. .. 더보기
[김진의 시시각각] 5·16과 51.6% [김진의 시시각각] 5·16과 51.6% [중앙일보]입력 2012.12.24 00:32 / 수정 2012.12.24 00:32 더 편리해진 뉴스공유, JoinsMSN 뉴스클립을 사용해 친구들과 공유하세요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한국 현대사에서 대통령들을 가장 가까이 지켜본 이는 누구일까. 박상범 전 국가보훈처장일 것이다. 해병대 장교 출신으로 경호실에 들어간 이래 그는 대통령 5인을 경험했다. 마지막엔 김영삼 대통령 경호실장을 지냈다. 1974년 8월 문세광이 육영수 여사를 쏘았을 때 그는 권총을 빼 들고 박정희 대통령 연단 앞을 지켰다. 79년 10월 궁정동 안가에서 대통령과 경호원들이 모두 피살됐을 때 그는 유일하게 살았다. 총을 맞고도 살아났다. 그가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은 박정희다. 지방 시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