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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의 한국 생활/한국 생활이야기

한중동포, ‘동질감이라는 이름’으로…

 

언젠가 외국에서 오랜 유학생활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온 사촌 형과 함께하는 식사자리에서, 기도하고 식사하는 사촌 형의 모습을 보고 “오랫동안 외국생활을 하더니 우리 형이 생각잖게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되였구나!”라고 한마디 건넸다.

그때 형은 “오랜 외국생활로 언어와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과 소통 또는 교류에서 별다른 장애가 없었지만, 왠지 늘 외로웠고, 무엇인가 모자라는 느낌에 꽤 방황했는데 그 모자람을 채우기 위해 찾고, 또 찾은 것이 한인교회였고, 그렇게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됐다”고 말했다.

그 진지한 고백을 들으면서 그토록 형을 외롭게 했고, 영혼에 모자람을 느끼게 한 그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아마 그것은 동질감이 아닐까.

우리는 흔히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말하곤 하지만, 하루를 바쁘게 살아가는 무수히 많은 사람은 서로 무심히 스쳐 지나가리라. 이와 같은 세상 속에서 놀랍게도 진한 연이 닿아서 내 부모ㆍ내 아내ㆍ내 자식ㆍ내 친구로 이루어진 관계들을 보면 참으로 기적 같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인연(또는 그 과정에서) 또한 더는 무심히 스쳐 지나가는 관계만은 아닐 것이고, 더 많은 동질감이 형성되었으리라 생각한다.

민족이라는 이름도 그것과 마찬가지라고 본다. 이 넓고 넓은 세상 속에서 ‘너’와 ‘내’가 같은 민족으로 묶여 있는 것을 보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인터넷 동포관련 사이트 여러 곳을 돌아보아도 한국인ㆍ조선족 불문하고 같은 민족이고, 동포라는 동질성 때문에 상대방에게 관심을 두고, 드나드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동질감보다는 이질감을 더 느껴 그것이 오히려 갈등과 충돌만 형성돼, 이제는 서로 같은 민족도, 동포도 아니라고도 한다.

그 말을 입에 올리는 사람들에게 나는 진정 동질감을 찾으려면 민족ㆍ동포와 같은 창백한 이름들을 잠시만이라도 잊으라고 권하고 싶다. 그것은 중국동포와 한국동포 관계가 민족이라는 이름만 같을 뿐, 반세기 넘게 너무 무심히 스쳐 지나갔던 관계였으므로. 같은 민족이라도 서로 아무런 지연도 없었던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마주쳐 민족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모든 부분에서 동질성을 찾겠다고 제멋대로 재단하거나, 뜬구름 잡는 식의 믿음과 신뢰만을 운운한다거나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는 창백한 낯빛에 굴곡이 깊고 음영이 짙게 드리운 모습일 뿐이다.

같은 민족이란 이름만으로 맹목적인 동질감을 느끼는 건 아니다. 수없이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 속에서 같은 언어ㆍ문자를 사용하고, 다양한 문화를 함께 숨 쉬고,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동질감을 느낄 수가 있고 그래서 같은 민족ㆍ동포를 새삼스럽게 다시 느낄 수가 있는 게 아니겠는가.

“나는 조선족, 너는 한국인, 너는 중화주의자, 나는 XX주의자이므로 동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같은 민족도 동포도 아니다” 등을 뱉어내 가름하는 말은 기실 같은 민족으로 동질감을 회복하는데 있어 무용지물에 불과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