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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존경하는 박정희편

[책과 길] ‘박정희의 양날의 선택’…그의 功―過는 ‘양날의 칼’이었다

[책과 길] ‘박정희의 양날의 선택’…그의 功―過는 ‘양날의 칼’이었다

“한국은 과거의 독재자가 사망한 지 겨우 20여년 후에 대다수 국민들이 그를 ‘최고의 대통령’이라고 인정하는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일 것이다.”

김형아 오스트레일리아국립대 교수의 말은 맞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26년 전 죽었지만 지금 살아있는 어떤 정치인보다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오죽했으면 김병국 고려대 교수는 ‘추천의 글’에서 “현재의 한국사회 자체가 박정희 시대의 유산인 셈”이라고 썼을까. 박정희는 도대체 누구인가. 선글라스를 낀 군인 독재자인가,고속도로 건설에 밤잠을 설친 근대화의 기수인가. 수많은 여인들과 술자리를 즐긴 방탕한 권력자인가 청빈하고 사심없는 지도자인가. 친일파인가 공산주의자인가 아니면 민족주의자인가.

박정희는 그 모두이다. 한 인간은 하나의 규정 속에 포획될 수 있는 게 아니고,한 인생은 명암과 영욕,성속을 함께 통과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박정희의 공(功)과 과(過)를 따져 무게를 달아 왔다. 공보다 과가 많다는 사람은 흔히 진보로 불리고,과보다 공이 앞선다는 사람은 보수로 분류되는 실정이었다.

그러나 김형아 교수는 우리를 새로운 박정희 논쟁으로 안내한다. 박정희를 지배한 욕망을 근대화,즉 ‘공업화를 통한 근대 한국’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근대화주의자 박정희의 심장 속에는 민족주의가 자리하고 있었던 것으로 이해한다. 박정희의 근대화주의는 북한의 위협과 미국의 간섭이라는 상황,가난에 대한 기억과 식민지 군인으로서의 치욕이라는 트라우마,그리고 일본의 발전에 대한 선망 등에서 발원한 것으로 추정한다.

박정희는 산업화를 위해 한국사회를 준전시체제로 재편한다. 그리고 숟가락을 공출해 무기를 만들듯 모든 자원을 총동원한다. 재벌을 파트너로 끌어들이고,미국을 이용하는가 하면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도 감행한다. 군인들을 월남전에 보냈고,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를 철저히 억압했다.

이 책은 박정희가 근대화 작업의 추진자로 쿠데타 동지나 경제관료가 아니라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를 선택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른바 ‘중화학공업화의 3두정치’가 그것인데,한국은행 출신의 김정렴 비서실장,자동차회사 공장장을 지낸 오원철 경제수석비서관 등과 함께 3두체제를 구축,중화학공업화를 강하게 추진했다. 이는 박정희의 근대화 사업이 단순히 정권 연장 차원이 아니라는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박정희는 세계에서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근대화를 달성했다. 저자는 박정희 찬양론자가 내세우는 공이란 다름아닌 박정희 비판론자가 강조하는 과(過)에 해당하는 유신독재 없이는 이뤄지기 힘들었다는 사실을 논증한다. 박정희는 산업화라는 개인적 야망과 국가의 이익이 합치된 목표가 오직 유신 체제,혹은 ‘한국식’으로만 성취될 수 있다고 믿었고,그런 믿음은 어느 정도 타당한 것이었다는 것이다. ‘양날의 선택’이라는 제목은 유신독재와 근대화가 병립하거나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양날의 칼처럼 한 몸이라는 의미를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박정희 시스템은 왜 붕괴했는가? 박정희는 자신의 근대화 욕망과 국가적 이익이 합치하는 시간 동안 근대화 혁명가였지만,둘이 어긋나는 순간부터 독재자였다. 한국의 현대 정치사를 경제발전과 민주주의 사이의 갈등의 역사로 볼 수 있다면,박정희는 갈등의 한 축인 경제발전을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의 선택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였고,그 결과로 자신도 희생당했다. 그가 주도한 근대화의 결실로 성장한 민주주의 요구가 그를 삼켜버린 것이다.

이런 시각으로 하여,이 책은 근래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박정희 관련서들 가운데 도두라져 보인다. 30여년 전,오스트레일리아로 건너간 저자가 그 거리만큼이나 국내의 이해관계를 떠나 시종일관 학문적 객관성을 유지하는 태도가 더욱 신뢰감을 준다.

지난해 영어로 출간한 책을 번역 출판한 것으로,10년이라는 집필 기간동안 동원된 자료와 인터뷰는 국내와 국외,진보와 보수를 아우르고 있다. 이 책의 등장으로 박정희 논쟁은 한층 생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김형아·일조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