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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의 한국 생활/한국 생활이야기

'주5일 150만원' 20세 이하 미혼女가 하던일을

'주5일 150만원' 20세 이하 미혼女가 하던일을

[중앙일보] 입력 2013.01.19 00:08 / 수정 2013.01.19 10:21

[현장 속으로] 맞벌이 자녀 키우는 ‘조선족 이모’ 3만명
아이와 먹고 자고 중국어까지 … “좋은 이모 만나는 건 오복 중 하나”

2009년 중국 지린성에서 한국에 온 장영순(56·왼쪽)씨는 3년째 두 아이의 보모로 일하고 있다. 평일엔 입주를 하며 청소·요리 등 집안 살림을 도맡는다. 방 세 개 중 하나는 장씨의 방이다. 평일엔 이곳에서 시원이 (가운데)·제원이 등 두 아이와 함께 잠을 잔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모, 과자봉지 좀 뜯어주세요.”

 “이모, TV 좀 봐도 돼요?”

 15일 서울 강남구 수서동의 한 아파트. 다섯 살 된 곽시원군은 장영순(56)씨를 꼬박꼬박 “이모”라고 부르며 따라다녔다. 장씨는 큰 아이 제원(7)과 시원이를 돌보는 입주 보모다. 특별한 점이 있다면 2009년 11월 중국 지린(吉林)성에서 온 중국동포(조선족)라는 점이다. 장씨는 아이들과 함께 먹고 자면서 청소·요리 등 대부분의 집안 살림을 도맡는다. 외국계 은행에서 일하는 아이 아빠는 아침 일찍 출근해 밤늦게 퇴근하고, 회사원인 아이 엄마도 퇴근 시간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방 세 개 중 하나는 장씨의 방이다. 이 방은 두 아이와 장씨가 함께 자는 침실이기도 하다. 방엔 두 아이의 상장과 동화책, 장씨의 옷을 쌓아두는 박스와 간단한 화장품 등이 깔끔히 정리돼 있다. 한쪽 벽면엔 아이들에게 중국어를 가르치기 위한 글자표가, 다른 쪽엔 영어 동화책이 수북이 쌓여 있다. “오늘 여기까지 공부하기로 했잖아. 이건 다 하고 TV 봐야지.” 장씨는 가끔씩 아이들에게 따끔하게 야단도 친다.

 장씨와 같은 ‘조선족 이모’를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후 4시. 장씨는 어린이집에서 제원이를 데리고 오다 다른 집에서 일하는 중국동포들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장씨는 “아침에 어린이집 버스에 아이를 태우러 나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저와 같은 조선족들”이라며 “같은 동에만 조선족 보모가 4명이나 입주해 있다”고 소개했다. 그가 주말마다 찾는 한중사랑교회에서도 교인 중 700여 명이 장씨처럼 보모 일을 한다. 이송이 동국대 교수는 “조선족 이모는 한국인을 고용하는 데 비해 비용이 적게 들고 언어 소통도 원활해 맞벌이 가정에서 하나의 대안으로 자리 잡은 상태”라고 말했다.

식모 → 파출부 → 중국동포 … 가정부 변천사

 1960~70년대 가정부의 일반적 형태는 ‘식모’였다. 이들은 고용한 집에 거주하면서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했다. 대부분의 식모는 농촌에서 상경한 20세 이하 미혼 여성들이었다. 그러다 80년대 들어 식모가 사라지고 시간제로 일하는 파출부가 가정부의 ‘대세’로 자리 잡았다. 주로 40~50대 도시 기혼여성들이 파출부로 나섰다.

 90년대엔 맞벌이 가구가 급격히 늘면서 새로운 형태의 가정부가 등장했다. 바로 ‘조선족 이모’다. 맞벌이하는 중산층 가정들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임금 수준의 보모를 찾았고, 마침 92년 한·중 수교 이후 입국 러시를 이룬 중국동포 여성들이 적격으로 떠올랐다.

 경기도 분당에서 2살과 3살 연년생 딸 둘을 키우고 있는 이수연(36·회사원)씨는 2년째 중국동포에게 육아를 맡기고 있다. “직접 아이를 키우면 좋겠지만 아이가 크는 동안 직장에서 쌓을 커리어를 포기할 순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한국인 보모를 쓰는 것도 생각했지만 돈 차이를 무시할 수 없고, 입주를 잘 안 하려는 한국인에 비해 조선족 이모들이 오히려 대하기 편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맞벌이 가구는 509만7000가구로 전체의 43.5%를 차지했다.

 이 같은 ‘조선족 이모’들은 전국적으로 3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는 지난해 11월 현재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중국동포를 45만9616명으로 집계하고 있다. 이혜경 배재대 교수는 “이 중 보모나 간병인 등으로 일하는 ‘돌봄 근로자’는 5만4000명쯤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곽재석 이주동포정책연구소장은 “30~40대 여성은 식당 서빙 일을, 50~60대 여성은 보모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중국동포 출신 보모 대부분이 수도권의 중산층 가정에 입주해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중국동포들의 진출이 늘면서 한국에 거주하는 조선족의 사회 형태도 변하고 있다. 최근에는 온 가족이 건너온 경우도 적잖다. 중국동포들의 자치모임인 한·중미래재단 이영한 사무국장은 “요즘엔 남편은 건설 현장에서, 아내는 보모로 일하다가 주말에 한자리에 모이는 게 조선족 가정의 일반적인 형태”라고 소개했다. 중국동포 사회가 커지면서 자녀 결혼식을 중국과 한국에서 두 번 치르는 모습도 종종 눈에 띈다. 중국동포들이 주로 결혼식을 여는 서울 대림동의 한 예식장은 6월까지 예약이 꽉 차 있다. 한국에서 받을 수 있는 각종 복지 혜택을 꼼꼼히 챙기는 ‘알뜰 조선족’도 늘었다. 건강보험 등 4대 보험에도 가입하고, 결혼 이민으로 한국 국적을 취득한 사람들은 이를 바탕으로 임대아파트를 얻기도 한다. 영주권자에겐 지방선거 투표권도 있다.

아이들 ‘○○ 동무’라고 불러 오해 받기도

① 장씨가 아이 공부를 챙겨주고 있는 모습.
②“여기까지 해야지.” 장씨는 중국어를 가르치며 따끔하게 야단도 친다.
③놀이터는 장씨와 같은 ‘조선족 이모’들이 만나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중국동포라 해도 이들은 외국인이다. 이수연 한국워킹맘연구소장은 “재작년 말부터 조선족 이모를 고용하고 있는 한국인들의 문의전화가 급속히 늘었다”며 “특히 외국인을 쓰는 데 따른 막연한 불안감과 임금에 대한 고민이 크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동에 사는 남승연(38)씨는 10년째 중국동포를 쓰고 있다. 그동안 좋은 보모도 만났지만 황당한 경우도 적잖이 겪었다. 3년 전에는 중국동포 보모가 물건을 훔치는 장면을 현장에서 목격한 뒤 그 자리에서 해고하기도 했다. 보모가 전에 일했다는 곳에 전화했더니 직업소개소 직원이 전화를 받기도 했다. 남씨는 “상황이 이렇다 보니 회사 내 여직원들 사이에서는 ‘좋은 조선족 이모 만나는 게 오복(五福) 중 하나’라는 말도 나돈다”며 “한국인 보모는 주민등록번호가 있어서 신분 보장이 되는 데 비해 중국동포들은 늘 불안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임금도 갈등을 부르는 원인 중 하나다. 이수연 소장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월 140만~150만원이 기본이라고 설명한다. 여기에 아이의 수가 많고 신생아일수록 임금이 오른다. 집 평수나 중국동포의 나이도 상관이 있다. 집이 넓을 경우 임금이 오르고 보모의 나이가 60세를 넘어가면 임금이 떨어지는 식이다. 여기에 보너스처럼 명절이나 생일에 조금씩 챙겨주는 게 관례처럼 돼 있다. 남씨는 “임금이 임의적으로 정해지다 보니 매년 조금씩이라도 임금을 올려줄 수밖에 없다”며 “월급 받아 이모에게 다 쓰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털어놨다. 처음에는 낮은 가격을 부르다가도 3개월 정도 지나면 임금을 올려달라는 경우도 적잖다. 하지만 이미 보모와 아이가 친해진 뒤라 아이 엄마들은 끌려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언어나 문화 차이로도 문제가 생긴다. 이수연씨는 “조선족 보모가 딸에게 갑자기 ‘○○ 동무’라고 말해 기겁한 적이 있다”고 했다. 이혜정(38)씨는 “가장 큰 문제는 문화적 차이”라며 “요리 방식도 의외로 다른 점이 많고 청결에 대한 인식 차이가 크다”고 말했다. 이두현(42)씨는 이런 이유로 중국동포를 쓰다 2년 전부터 한국인 보모를 쓰고 있다. 그는 “의사 소통도 잘 안 됐고, 집에서 동료 보모들과 중국어로 통화하는 것도 부담스러웠다”고 말했다.

 불만이 있기는 중국동포들도 마찬가지다. 2002년 한국에 들어와 보모 일을 하고 있는 오진숙(58)씨는 “처음 일하러 간 집에선 아이 엄마가 일부러 지갑을 놓고 가면서 내가 어떻게 하는지 보더라”며 “고용주가 나를 믿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더 이상 남아 있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차라리 한국 정부가 철저하게 관리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중국에서 공무원으로 지내다 퇴직한 뒤 한국에 일하러 나왔다는 오씨는 “중국에서의 경력이 확인돼 아이 부모와 신뢰 관계가 쌓이면 우리도 의심을 안 받고 좋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고절차 복잡해 2500명만 등록

 장영순씨는 2009년부터 보모 일을 했지만 지난해 8월에야 고용노동부 고용센터에 가사도우미 신고를 마쳤다. 과정이 번거롭다 보니 그동안 차일피일 신고를 미뤘기 때문이다. 고용센터에 신고를 하려면 고용인과 보모가 함께 고용센터를 들러야 한다. 하지만 맞벌이하는 아이 엄마에게 낮에 시간을 내서 고용센터를 같이 가자고 부탁하는 건 결코 쉽지 않다. 아이 부모가 직업소개소 대신 고용센터를 통해 조선족 이모를 구하려면 더욱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내국인 우선 고용 원칙 때문이다. 한 차례 방문해 구인 공고를 내고, 2주 뒤 내국인을 구할 수 없다는 확인을 받아야 중국동포를 소개받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지난해 가사도우미로 신고된 중국동포는 2500여 명에 불과하다. 대부분 신고하지 않고 일하고 있는 셈이다. 이혜경 교수는 “고용센터에 신고하면 고용인이 보모의 신원과 과거 이력을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며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전화나 FAX·인터넷 등으로 신고할 수 있도록 하면 고용인이나 보모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중장기적으로는 가사 도우미 신고제 대신 등록제를 실시해야 한다”며 “2008년부터 요양보호사를 제도화했던 것처럼 육아 도우미도 정부의 관리 영역에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국회에서도 관련 논의가 진행 중이다. 민주통합당 김춘진 의원은 가사 근로자 신고제를 한층 강화하고 이들을 노동자로 인정하는 내용의 ‘가사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여기엔 ‘조선족 이모’ 같은 외국인 가사 도우미도 포함된다.

 중국동포들에 대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송이 동국대 교수는 “중국동포 여성들 상당수가 가사 도우미로 취직하는 데 비해 이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은 전무한 상태”라고 말했다. 육아법이나 한식 요리, 한국 가정의 생활문화 등을 익힐 수 있는 실질적인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조선족 이모의 근무 조건과 역할 등에 대해 사회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기준을 만드는 것도 시급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이상화·송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