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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관련 자료들

정치가 아닌 ‘문화적 시각으로 보는’ 7.27

 

오늘도 예외 없이 광화문광장을 지나다가 미국대사관 앞에서 치러지는 여러 기념행사를 목격했다. 갑자기 맑게 개였던 하늘이 점심 무렵부터 끄물끄물 흐려지는가 싶더니 비가 내린다. 그 날씨가  전이됐는지 기분이 조금 우울해진다.

남한에서는 우방인 미국과의 동맹 60주년을 기념한다고 들썩이고, 북한에서는 우방인 중국을 초청해 놓고 항미원조전쟁 승리 기념 60주년이라고 광장무를 춘다.

그 광경을 보면서 평화주의자인 필자는 정치가 아닌 문화적인 시각으로 접근하고 싶다. 왜 한 문화권이 두 개로 나뉘어 서로 기 싸움을 하면서 전혀 다른 문화권을 끌어들이고, 이도 저도 아닌 문화권을 만들어 가는 것일까.

1986년도 봄이었던가. 중ㆍ월전쟁 중의 영웅들이 연변대에 와서 영웅사적 보고를 한 적이 있다. 그 보고 뒤에 학생대표들이 하나둘씩 나서서 ‘영웅을 따라 배워야 한다’는 주제로 웅변을 토해냈다. 필자도 어찌 어찌하다가 학생대표로 선발돼 조선말로 웅변하게 됐다.

그런데 글쎄, 그 당시 필자가 연단에 나서서 한 발언이 무엇이었는지 아는가.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 발언은 대략 이와 같다.

“오늘 우리가 영웅을 배움에 모두 용감무쌍한 정신을 따라 하고자 하는데 나는 다른 의견을 갖고 있다. 전쟁은 인류의 재난이다. 국가의 1차 선발에서 합격한 대학생들이 국가의 2차 선발에 합격한 군대의 정신을 따라 배운다는 건 말이 안 된다. 1차 선발에 합격한 대학생으로 전쟁에서 우리 편의 정신을 따라 배울 게 아니라 더 높은 차원에서 인류에게 재난만 가져다주는 전쟁을 억제할 수 있는 지혜를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아예 대학생이 다 전쟁판에 나가야 하는가?!”

이렇게 열변을 토하고 있었는데 이쯤에서 그만 마이크가 꺼져버렸다. 그래도 필자는 소리도 안 나는 마이크를 계속 잡으며 두루뭉술하게 웅변을 끝내고 연단에서 내려왔다.

언제면 정전 기념회가 남과 북이 합동으로 개최해 ‘종전 및 통일 기념경축행사’라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양측에서 중ㆍ소ㆍ 미ㆍ영 등 60년 전 참전국가 모두를 손님으로 초청해 서울의 광화문 또는 평양의 개선문에서 화합의 축배를 들게 할 수 없을까.

하나의 문화권이 이념으로 찢긴 전례는 많지만 유독 반도가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 있는 예리한 날을 세우고 있어서 보기가 안쓰럽다. 방관자로만 존재할 수 없는 필자로서는 그 서슬이 퍼런 이념의 날이 고통스럽기도 하다.



老子
연변통보 2013-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