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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관련 자료들

병원, 의사와 인도주의정신

사람이 사느라면 이런 일 저런 일에 부딪칠 때가 있다. 어느 하루 귀가 가려워서 면봉으로 귀를 우비다가 앞부분의 솜을 그만 귀속에 빠뜨렸다. 내가 참대가치로 빠져나간 솜을 빼내려 아무리 애썼으나 허사였다. 잘못하다간 참대가치에 귀속의 피부가 파렬되여 염증을 일으킬수 있었다.

 

할수없이 이비인후과병원으로 찾아갔다. 7원짜리 진찰권을 떼고 이비후과로 들어가 상황을 얘기하니 의사는 귀속의 이물질을 빼는데 45원을 내라는것이였다. 나는 그만 멍해졌다. 자그마한 솜뭉치를 빼내는데 45원이 든다면 귀앓이로 치료를 받는다면 그 의료비가 얼마나 많을것인가? 나는 하도 어이가 없어 의사하고 따지고 물었다.

 

《의사선생, 복잡한 수술도 아니고 귀속에 든 자그마한 솜뭉치를 꺼내는데 45원이나 받습니까?》 의사는 의아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더니 이는 물가국에서 결정한 가격이며 치료비가 비싸다고 생각되면 다른 병원으로 가보라고 말하는것이였다. 내가 7원짜리 진찰권도 떼였으니 핀센트로 끄집어내주면 안되는가고 물었더니 의사는 《미안하지만 안됩니다. 진찰권은 말 그대로 진찰권이지 의료비용이 아닙니다. 나는 이 병원의 의사로서 병원의 규정을 어길수 없습니다.》라고 잘라 말하는것이였다.

 

나는 저도 모르게 과거가 떠올랐다. 그때는 이까짓 귀속의 이물질을 빼내는것은 두말 할것도 없고 넘어져 피부가 상해도 어느 병원에서든지 무료로 치료를 받을수 있었다. 소독수를 발라주고 붕대로 싸주는것쯤은 단돈 일전도 받지 않았다. 허지만 지금은 크고작은 일에 돈밖에 모른다.

 

의사의 목적은 환자를 치료하는것이여야 하는데 아예 돈을 버는 것으로 되였다. 그래서 돈이 없으면 사람이야 죽던 말던 꽂았던 주사바늘도 뽑아 버린다는 말까지 있겠는가? 물론 경제시대에 환자가 치료를 받으려면 돈을 내야 하는것은 자명한 일이다.

 

나도 외국바람에 휩쓸려 해외에 나가본적이 있다. 내가 다녀왔던 나라에는 의료봉사쎈터가 도처에 있었다. 작은 병은 물론, 큰 병도 무료치료이다. 후에 안 일이지만 이런 의료봉사쎈터의 모든 의료비는 사회의 각 계층 민중들이 부담하는것이였다. 허나 유감스럽게도 우리 나라에서는 이런 의료봉사쎈터가 하나도 없다.

 

 

요즘은 돈이 없으면 병원에도 가지 말아야 한다. 돈이 없으면 능히 살수있는 사람도 죽어야 한다. 그래서일가? 20년전만 해도 각 병원의 정문에 커다란 붉은 글씨로 《죽는 사람을 구하고 상한 사람을 치료하는 혁명적 인도주의를 실행하자(救死扶伤实行革命人道主义)》라는 모주석의 호소가 걸려있었는데 지금은 그 어느 병원에도 찾아볼수 없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는 도저히 리해할수 없다.

 

빵빵 울리는 자동차의 경적소리에 사색에서 깨여보니 나는 큰길 한가운데 서있었다. 하마트면 차에 치일번했다. 다행히 운전수가 《인도주의》적이였기에 나는 사경에서 벗어났다. 가령 이때 내가 차에 치여도 운전사의 책임은 극히 적다. 왜냐하면 내가 교통규칙을 어기고 자동차가 쌩쌩 달리는 차도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이러고 보니 우리 사회에도 인도주의가 전혀 없는것은 아니였다.

 

나는 도로변을 걷다가 무의식간에 《모모치과》라는 병원간판을 보았다. (치과병원에도 크고작은 핀센트가 있으니 귀속의 솜뭉치를 빼낼수 있을것이다)고 생각하며 나는 치과병원에 들어갔다. 나의 사정을 듣던 50대의 치과의사가 반사경을 머리에 쓰고 나의 귀를 들여다보더니 이물질이 있다며 가느다란 핀센트로 솜을 빼내는것이였다. 단 1초가 걸렸다. 그것을 빼내니 귀가 시원하고 정신이 맑아지는듯 싶었다. 내가 너무도 고마워 돈 10원을 의사손에 쥐여 주었더니 《요까짓 일에 무슨 돈을》 하면서 견결히 받지 않는것이였다.

 

나는 요즘세월 의료계통에는 인도주의가 사라져 없어진 줄로 착각했다. 개인진료소에라도 이런 무료봉사 인도주의정신이 살아있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이러고 보니 사회의 모든 의사가 다 돈밖에 모른다고 단언한 내가 얼마나 몰상식한가.

 

/(연길)오인범

/길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