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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관련 자료들

못쓰게 된 물건은 고치면 되겠지만…

일전 고향에 다녀왔다.

조선족들의 한국진출과 도시진출로 고향은 많이 쓸쓸해졌지만 떠나온지 20여년이된 고향은 마냥 정겹고 따뜻하다.

산간벽촌에 위치한 고향이지만 20여년전만하여도 신빈지역에서 살기 좋기로 소문난 곳이였다. 당시 동북국 제1서기였던 송임궁이 시찰을 다녀간 덕분에 고향은 그 지역에서 제일 먼저 70년대부터 마을건설전망계획을 세우고 벽돌집들을 지었으며 마을길도 “+”자로 잘 되여있었다.

한국붐이 일기 시작하여서부터 고향은 변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마을에서 오래전부터 간부를 하던 사람들도 “숭고”한 직업을 그만두고 한국으로 떠났다. 마을의 한 “량반”이 새로운 간부로 되였다. 그후 마을의 집체소유였던 산은 마을사람들이 모르는 상황에서 헐값으로 팔렸고 집집마다 전후로 사통팔달하던 마을길을 한가닥만 남겨놓고 길마저 팔았다. 물론 촌민들은 돈의 그림자조차 보지 못했다. 촌민들은 의론이 자자했다. 촌민들은 분노했다. 마을의 촌장 겸 서기였던 그 “량반”은 촌민들의 분노가 두려웠는지 법의 위압을 느꼈는지 아담한 3간 벽돌집을 버려둔채 심양으로 이주했다.

고향마을에는 많은 빈집들이 있다. 한국간 사람들의 빈집, 도시로 이주한 사람들의 빈집들이 20여채는 된다. 집을 비워두고 한국에 간지가 몇년씩 되지만 모두가 털끝하나 손상이 없었다. 하지만 촌의 간부였던 그 “량반”의 집만은 례외였다. “만신창”이가 되였다. 유리창은 깨지고 창문은 부서지고…
못쓰게 된 물건은 고치면 되겠지만 고향사람들의 마음속에 추락한 그 ”량반”의 형상도 고칠수 있을가?      

/윤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