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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지구환경관련

근대 문화유산 보존과 지역 공동체 문화 복원


‘낙후’와 ‘옛것’은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관점을 달리하면 버릴 것은 곧 지킬 것이 되지요. 지금 대전 동구 소제동에선 일제강점기 철도관사촌을 보존하고, 이와 함께 지역의 공동체 문화를 복원하자는 움직임이 활발한데요, ‘시간이 멈춘 곳’에 생기를 불어넣는 작업, 그 현장을 다녀왔어요. ^^  

 

 

대전 소제동 철도관사촌, 근대 문화유산 보존 움직임
“내가 처음 여기 왔을 때만 해도 대전에 도청 관사가 있던 대흥동이 일등, 그다음이 선화동, 여기가 세번째로 좋은 동네였지. 철도관사들이 많았어. 철도일 하는 사람들도 졸병들은 안 살았어. 적어도 과장급, 계장급은 되야 살았지. 그때만 해도 철도관사 주변엔 돈이 그렇게 많이 돌았지. 지금은 재개발이니 어쩌니 하지만….”

 
대전광역시 동구 소제동. 이종완(76)씨가 운영하는 이발소는 이 동네 사랑방입니다. 대전이 광역시가 아닌 충청남도 대전시였던 시절 이용사 면허증을 땄다는 그는 부자 동네로 명성을 날리던 그 시절부터 재개발을 피할 수 없게 된 지금까지 50년 가까이 소제동을 지켜왔습니다. 소제동은 대전역 동광장에서 계룡공업고등학교 방향으로 좁은 도로를 따라 걸으면 나오는 곳인데요,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3,561명의 주민이 사는 조그만 동네입니다. 

 

 

 
알려진 대로 대전은 철도가 키운 도시입니다. 경부선 부설 이후 1914년 호남선 철도까지 개통되면서 대전은 일약 근대 철도교통의 중심지가 됐어요. 자연히 철도 관련 기술자들이 늘었고 대전역을 중심으로 거대한 관사촌이 형성됐지요. 소제동 역시 그중 하나인데요, 당시에는 세 곳의 관사촌 중 하나인 ‘동(東)관사촌’이라 불렸답니다. 현재까지는 대략 40여 채의 관사가 남아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고요. 

 
하지만 지금 이곳은 이씨가 기억하는 과거의 소제동과 많이 달라요. 도시가 확장되고 대전의 중심이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빠르게 쇠락의 길을 걸었지요. 사람들은 이제 소제동을 ‘낙후 지역’ ‘재개발 예정지’ ‘슬럼가’ 등의 이름으로 부른답니다. 실제로 소제동 면적의 절반 이상은 대전시가 2009년 수립한 역세권 재정비 촉진계획에 포함됐어요. 

 

지역 주민 사진전 열고 음악회도 개최

모두 헐고 새로 짓는 뻔한 개발 시나리오만 남았으리라 생각했던 4년 전, 이곳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몇몇 이들이 근대 문화유산으로서 소제동의 가치를 보존하자고 나서면서부턴데요, 이들은 ‘대전 근대 아카이브즈 포럼(DMAF)’이란 공동 연구단을 구성해 행동에 나섰어요. 이는 대전시와 목원대가 공동 추진하는‘대전 근대사 아카이브 구축 및 활용 사업’의 일환이고요.  

 
이 사업은 참신함을 인정받아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원하는 지역문화컨설팅사업에도 선정됐어요. 소제동의 문화적 가치를 지키는 동시에 지역의 공동체 문화를 복원해보자는 일종의 실험이었죠. 포럼의 일원인 유현민 연구원은 “소제동은 철도 시대 대전의 옛 모습을 간직한 소중한 문화자원”이라며 “그 속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는 그 자체로 비싼 역사”라고 말했답니다. 

 
둘러보니 그의 말대로 소제동 곳곳에는 이야깃거리가 넘쳐나요. ‘시간이 멈춘 곳’이란 표현이 가장 정확할까요? 요즘도 이런 동네가 있나 싶을 정도로 협소한 골목과 색 바랜 간판. 사람 키 높이의 담장과 그 위로 빼꼼히 고개를 내민 열매 없는 감나무. 이젠 못 보고 자란 세대가 더 많아졌을 낡은 슬레이트 지붕과 100년 된 나무 전봇대까지 동네 전체가 문화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죠. 유 연구원은 “소제동은 사람과 시간의 때가 고스란히 살아숨 쉬는 공간”이라고 말합니다. 

 
‘대전 근대 아카이브즈 포럼(DMAF)’는 소제동 안에 ‘소제관사 42호’라는 이름의 베이스캠프를 만들었어요. 일제강점기에 개별 관사촌이 ‘○○호’와 같은 이름으로 불리던 것을 응용한 것이죠. 실제로 소제동에는 지금도 51호, 55호 등 숫자가 적힌 일부 관사가 남아 있는데요, 이들이 소제동에서 가장 먼저 시작한 작업은 역사를 복원하는 일이었습니다. 

 
유 연구원은 철도관사 42호 안에 소제사진관을 열고 184일 동안 지역 주민들을 만나 그들의 삶을 글과 사진으로 엮었어요. 다양한 세대의 주민들과 소통하며 관사촌의 형성 과정부터 도시의 성쇠에 얽힌 스토리를 되살리는 작업이었죠.  

 
경로당에서 만난 강영규(85) 할아버지부터, 43년째 한자리에서 약국을 지킨 장병길(75)씨와 1979년부터 슈퍼를 운영하는 윤광원(64)·김명옥(56)씨 부부 등 100명이 넘는 주민들을 취재했어요. 이 과정에서 30~40년 동안 소제동을 지키며 살아온 원주민도 몰랐던 이야기가 쏟아졌고 누군가는 잊었던 ‘과거’ 역시 타인의 기억으로 되살아났지요. DMAF는 이 자료를 모아 사진전을 열었습니다. 

 

 
뜻을 같이하는 작가들도 모였는데요, 지금 소제관사 42호에는 두 명의 작가가 상주하고 있어요. 회화작가 노상희씨와 거리예술가 원정연 작가가 있으며, 원 작가는 “조만간 소제동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래피티(graffiti)로 표현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지난해 젊은 음악인들을 모아 소규모로 개최한 ‘골목길 음악회’ 역시 좋은 반응을 얻었어요.

 
역사와 예술이 만나자 소제동에는 생기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경계하던 주민들도 좋은 취지를 이해하고 호감을 나타내기 시작했는데요, 어르신의 영정사진을 무료로 촬영해주거나 아이들과 함께 골목길 그림 그리기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한 덕분이에요. 

 
DMAF의 노력과 함께 소제동의 운치 있는 옛 모습이 일부 작가들에 의해 알려지면서 최근 이곳을 찾는 이들이 많아졌어요. 한 단편영화의 촬영지로도 활용되기도 했고, 이제는 일반 관광객도 제법 늘었습니다. 고윤수 대전시 학예연구사는 “어떤 이들은 이 관사촌을‘적산가옥(敵産家屋·일본이 패망 후 철수하며 남긴 집이나 건물)’이라 부르지만 그럼에도 이곳은 문화재”라며 “장소성과 역사성을 살릴 수 있는 개발 방식을 주민들과 함께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낙후’와 ‘옛것’은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관점을 바꾸면 버릴 것은 곧 지킬 것이 되지요. ‘지금’은 ‘옛날’에서 꽃피고, 아픔 또한 역사입니다. 대전 소제동에서 그 현장을 만나 보세요~! ^^ 


이 글은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행하는 위클리공감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