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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이순신 어록 1 丈夫出世 用則效死以忠 不用則耕野足矣. 대장부로 세상에 나와 나라에서 써 주면 죽음으로써 충성을 다할 것이요. 써주지 않으면 야인이 되어 밭갈이하면서 살리라. 충무공이 1576년(선조9) 2월 식년무과에 합격하고나서 임용발령을 조용히 기다리며 한 말로 자신의 보직이나 출세를 위하여 권문세가에 출입하여 아첨하거나 영화를 탐내지 않기로 결심하였다. 在下者越遷 則應遷者不遷 是非公也 且法不可改也. 승진해야 할 사람이 승진을 못하고 순서를 바꿔 아래 사람을 올리는 일은 옳지 못합니다. 또한 규정도 고칠 수 없습니다. 1579년(선조12) 2월 훈련원 봉사(奉事 : 정 8품)였었는데 지금으로 말하면 국방부 산하의 교육훈련 담당 부서이다. 그 때의 상관은 병부정랑(丙部正郞 : 정 5품, 지금의 과장급) 서익(徐益)이 .. 더보기
이순신장군에 대한 세계적 평가 “그의 이름은 서구 역사가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의 공적으로 보아서 위대한 해상 지휘관들 중에서도 능히 맨 앞줄을 차지할 만한 이순신 제독을 낳게한 것은 신의 섭리였다. 이순신 제독은 광범위하고 정확한 전략판단과 해군전술가로서의 특출한 기술을 가지고 있었으며, 탁월한 지휘통솔력과 전쟁의 기본정신인 그칠 줄 모르는 공격정신을 아울러 가지고 있었다. 그가 지휘한 모든 전투에 있어 그는 언제나 승리를 끝까지 추구하였으며, 그 반면에 그 용감한 공격이 결코 맹목적인 모험은 아니었다는 점은, 넬슨 제독이 기회가 있는 대로 적을 공격하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다가도 성공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세심한 주의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유사하다. 이순신 제독이 넬슨 제독보다 나은 점을 가졌으니, 그것은 기.. 더보기
이순신에 대한 역사적평가 ‘순신의 사람됨이 말과 웃음이 적고 얼굴이 단아하고 근엄하게 생겨서 마치 수양하고 있는 선비와 같았으나 속에는 담기가 있었다.’ [寡言笑容貌雅飭 如修謹之士中有膽氣] 서애 유성룡(柳成龍) ‘충무공의 집사?하인 및 공을 섬긴 사람들을 만나서 공의 용모와 기호의 모습이 어떠한 사람이었나를 물어 알 수 있었다.‘공은 큰 체구에 용맹이 뛰어나고 용기가 있었으며 수염이 붉고 담기가 있었다.’ [詰公容貌嗜好姿狀爲何如人 公長軀精容赤?髥膽氣人也] 백호 윤휴 이순신이 나라를 위하는 충성과 적을 방어하는 재주는 옛날에도 그 짝이 없었습니다. 싸움터에 이르러 머뭇거리는 바도 또한 병가(兵家)의 이기고자 하는 계획인데, 기회를 보고 정세를 살피고 있는 것을 가지고 방황하면서 전투를 하지 않는다고 하여 죄인이 될 수 있겠습니까... 더보기
이순신 어록 ♧ 이순신의 명언 ♧ 집안이 나쁘다 탓하지마라. 나는 몰락한 역적의 가문에서 태어나 가난 때문에 외갓집에서 자라났다. 머리가 나쁘다고 말하지말아라. 나는 첫 시험에서 낙방하고 서른둘의 늦은 나이에 겨우 과거에 급제했다. 좋은 직위가 아니라고 불평하지말라. 나는14년 동안 변방 오지의 말단 수비 장교로 돌았다. 윗사람의 지시라 어쩔수 없다고 말하지말라. 나는 불의한 직속 상관들과의 불화로 몇차례나 파면과 불이익을 받았다. 몸이 약하다고 고민 하지말라. 나는 평생동안 고질적인 위장병과 전염병으로 고통을받았다.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말아라. 나는 적군의 침입으로 나라가 위태로워 진후 마흔 일곱에 제독이되었다. 조직의 지원이 없다고 실망하지 말아라. 나는 스스로 논밭을 갈아 군자금을 만들었고 스물세.. 더보기
백의종군 나이 연,월,일 간지 충무공 년보 32세 1576년(병자 : 선조 9) 2월 식년 무과 병과 4등 급제. 12월 함경도 동구비보 권관. 35세 1579년(기묘 : 선조12) 2월 훈련원 봉사. 10월) 충청병사 군관(서산 해미). 36세 1580년(경진 : 선조13) 7월 전라좌수영 발포 수군만호 (고흥). 37세 1581년(신사 : 선조14) 12월 군기경차관 서익의 모함으로 파직. 38세 1582년(임오 : 선조15) 5월 훈련원 봉사로 복직. 39세 1583년(계미 : 선조16) 7월) 함경도 남병사 군관. 10월) 함경도 건원보 권관. 11월) 훈련원 참군(정 7품). 40세 1584년(갑신 : 선조17) 1월 부친 별세로 아산에서 奔喪(분 상) 벼슬을 쉬다. 42세 1586년(병술 : 선조19).. 더보기
나라를 사랑하는 정신 오늘날 우리들이 말하는 ‘나라’라는 개념은 국토와 국민과 주권의 세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국민이면 누구나 국토를 사랑하고, 국민 모두를 위한 참된 마음을 갖는 것이 곧 나라를 사랑하는 정신이라 할 것이다. 우리 역사상 나라를 사랑한 수많은 위인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이순신 장군은 어느 누구보다도 나라를 사랑한 분이며, 이는 와 등에 넘쳐흐르고 있으며, 사사로운 편지글에서도 우국의 심정을 토로한 대목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이순신은 말과 글로써만 나라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마음과 말과 행동’이 한결같이 일치하고 있었다는 데 우리들의 가슴을 뜨겁게 한다. 이순신은 눈앞에 보이는 일시적인 안락을 저버리고 그 당시 천시되었던 무인이 되기로 결심하였으니, 이는 오랑캐가 자주 침범하는 그 당시에.. 더보기
세종대왕함과 충무공 이순신함 세종대왕함과 충무공 이순신함 1. 세종대왕함 대한민국 최초의 이지스함. 2004년 9월 건조를 시작하여 2007년 5월 25일 진수하였다. 360도 전방위를 감시하는 스파이-1D 이지스 레이더와 각종 미사일, 기관포로 3중 방공망을 구축한다. 최대 1000km 떨어져 있는 항공기나 미사일을 찾아낼 수 있고, 900개의 목표물을 동시에 추적할 수 있다. 현존하는 함정 가운데 방어력이 가장 뛰어나다. '꿈의 함정' 또는 '신의 방패'라고도 불린다. 세종대왕함의 진수로 한국은 미국, 일본, 스페인, 노르웨이에 이어 5번째 이지스함 보유국이 되었다. 세종대왕함은 미국의 주력 이지스함인 알레이버크 급 구축함보다 10%나 더 크고, 일본의 최신형 아타고 급 보다 조금 더 크다. 성능도 미국의 이지스 구축함을 제외하.. 더보기
이순신이 조선수군 패잔선 12척 지휘를 시작한곳 1597년 7월 16일(음력), 이순신과 조선민중이 만든 동양 최강 조선수군은 칠천량앞바다(거제도)에서 일본수군에게 궤멸당한다. 조선왕 이연(선조)은 조일7년전쟁 승승장구 조선을 구한 이순신을 왕명을 어겼다는 죄목으로 한산도 수군본영에서 체포하여 압송하고 원균을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한다. 3월 4일 옥에 갇혔고, 4월 1일 감옥에서 나와 백의종군길에 오른다. 불과 4개월만에 원균이 지휘하는 조선수군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달아나기에 바뿐 군대가 되어버렸다. 그 결과 만여명에 달하는 수군과 100여척의 전함은 칠천량앞바다에 수장당했다. 경상우수사 배설 또한 마찬가지다. 수많은 적들에 둘러쌓인 공포를 못이겨 정찰임무 도중 12척을 이끌고 도망가 하동 노량진에 숨어든다. 칠천량의 패전으로 다급헤진 왕 이연.. 더보기
21세기 필요한 이충무공의 5대정신-충무공편 이순신의 5대정신 5대정신 요소 관련근거 본받을 점 나라를 사랑하는 정신 조국애 국토애 민족애 국토수호와 결상항전의 의지 금토패문의 답문 백성들을 보호하는 모습 주인의식을 바탕으로 한 국토애와 민족공동체 의식을 갖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실천한다. 정의를 실천하는 정신 정의실현 신념용기 발포수군 만호 당시 전라좌수사 성박의 사적인 명령거부 병조판서 유정의 청 거절 (한성 훈련원 봉사 시절) 공(公)과 사(私)를 구분하는 마음을 갖고 그것을 끝까지 지키려는 굳은 신념과 용기를 견지한다. 책임을 완수하는 정신 자주성 자립성 지휘관으로서 부하들의 실수 에 대해 책임을 지는 모습 수군 철폐에 반대하며 끝까지 바다를 수호하려는 책임의식 《송사》를 읽은 후의 다짐 노량해전에서 전사하는 순간 사회와 조직 안에서 자..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