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신의 사람됨이 말과 웃음이 적고 얼굴이 단아하고 근엄하게 생겨서 마치 수양하고 있는 선비와 같았으나 속에는 담기가 있었다.’ [寡言笑容貌雅飭 如修謹之士中有膽氣] 서애 유성룡(柳成龍)
‘충무공의 집사?하인 및 공을 섬긴 사람들을 만나서 공의 용모와 기호의 모습이 어떠한 사람이었나를 물어 알 수 있었다.‘공은 큰 체구에 용맹이 뛰어나고 용기가 있었으며 수염이 붉고 담기가 있었다.’ [詰公容貌嗜好姿狀爲何如人 公長軀精容赤?髥膽氣人也] 백호 윤휴
이순신이 나라를 위하는 충성과 적을 방어하는 재주는 옛날에도 그 짝이 없었습니다. 싸움터에 이르러 머뭇거리는 바도 또한 병가(兵家)의 이기고자 하는 계획인데, 기회를 보고 정세를 살피고 있는 것을 가지고 방황하면서 전투를 하지 않는다고 하여 죄인이 될 수 있겠습니까. 상께서 만약에 이 사람을 죽인다면 사직이 망할 것이거늘 어찌하려 하십니까. 정경달의 변호 기록 내용
“한산도에 진을 치매 적이 감히 엿보지 못하고 한바다를 가로 막으매 그대 힘만 믿었더니 지난해에 패전한 것 원통한 말 어이할꼬. 그대 그냥 두었던들 그럴 리가 있었으랴. 대장을 잘못 바꿈, 이 나의 허물이라 누구더러 도와 달란들 기운 짐 어이하리. 두번 다시 부임하여 무너진 뒤를 이어 혼란을 수습하고 군졸을 불러 모았도다 … 사랑홉다 그대여, 공로는 사직에 있고 빛나는 충성 절개 죽어도 영화롭다. 인생 한 세상에 한번 죽음 못 면하네. 죽을 데서 죽은 이로 그대 같은 이 드물도다.” 선조가 내린 卒逝後賜祭文
“아 공으로 하여금 만일 그 날에 죽지 않게 했다면 일개 공신에 지날 것이 없는데 이제 마침내 그 충성을 선양하고 절개를 표창함이 천지에 찬란하니 비록 죽어도 오히려 살았도다. “성을 버리고 군사를 패한 무리들은 몸이 그대로 성하여 제방 창문 아래서 늙어 죽는데 이순신의 충렬은 마침내 몸을 버림에까지 이르렀으니 하늘의 보답이 어찌이리 공평치 못한고.” “그러나 구차스레 제 목숨을 보존한 자들은 저 나뭇잎 위에 붙은 먼지와 다를 것이 없거니와 이것으로서 저것에 비긴다면 하늘의 은총이 또한 풍족하다고도 할 것이다. 충민사기중 영의정 박승종
이순신(李舜臣)의 사람됨을 신이 직접 확인해 본 적이 없었고 한 차례 서신을 통한 적밖에 없었으므로 그가 어떠한 인물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전일에 원균(元均)이 그의 처사가 옳지 못하다고 한 말만 듣고, 그는 재간(才幹)은 있어도 진실성과 용감성은 남보다 못할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신이 본도에 들어가 해변 주민들의 말을 들어보니, 모두가 그를 칭찬하며 한없이 아끼고 추대하였습니다. 또한 그가 4월에 고금도에 들어가자 만사를 적절히 조치하여 불과 몇 달 사이에 민가와 군량이 옛날 한산도에 있을 때를 능가한 것을 알고 비로소 그 역량이 남보다 뛰어남을 알게 되었습니다. 좌의정 한음 이덕형(李德馨)의 장계에
“황천에서 다시 일으켜 볼 수 없음을 생각하고 백 명을 대신 바치고도 물려 올 수 없음을 안타까이 여깁니다.” 충무공 제문에서 영의정 오윤겸
절개에 죽는다는 말은 예부터 있지만, 제 몸 죽고 나라 살린 것, 이 분에서 처음 보네. 현중사 제문 숙종대왕
“이순신은 백 번 싸운 장군으로서 한 손으로 친히 무너지는 하늘을 붙든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순신은 재질을 가지고도 운수가 없어 백 가지 재능을 한 가지도 풀어 보지 못한 사람이었다.” 영의정 서애 유성룡
“왜적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이순신의 해군입니다. 그를 가둬서는 아니 됩니다. 원균을 대신 보내서는 안 됩니다.” 도체찰사 오리 이원익
“이순신의 화평하고 어진 덕과 과단성 있게 일을 처리하는 재능 그리고 상과 벌을 곧바로 주는 용기 같은, 만일 다른 사람이 이런 정도의 분이라면 백세에 이름을 날릴 사람이라 하겠지만, 이순신에게 있어서는 그저 당연히 해야 할 하찮은 일로 여겼을 뿐 공명을 바라지 않았던 그런 사람이었다.” 영의정 백사 이항복
“통제사 이순신은 임진년에 수군을 거느리고 바다 가운데서 적을 막아 여러 번 왜선을 부수고 적을 사로 잡아 죽이기를 수없이 했다.적은 두려워하여 다시는 감히 수로를 통하여 서쪽으로 오지 못했다. 그래서 호서와 호남이 안전함을 얻어 나라를 회복한 것은 모두 그 힘이다. 이조판서 지봉 이수광
“이순신은 진실로 대적이 없는 참 장군이요, 다른 이들은 모두 겨우 몽매한 것이나 면한 정도이다.” 오산 차천로
“이순신은 곧은 절개를 지켜 우뚝하니 벽처럼 선 사람이었다.이순신은 몸을 꼿꼿이 하고 간 사람이며, 이순신은 전쟁을 당하여서도 뜻이 조용하여 언제나 여유가 있는 사람이었다. 이순신은 온 군대가 한 마음이 되어 감히 그의 명령을 어기는 일이 없던 사람이었다. 이순신은 비록 역사상에 명장으로 백 년에 한두 사람밖에 나오지 않는 위인이라 할지라도 이순신보다 더 훌륭한 분이 있을 수 없다.“ 홍문관 예문관 대제학 택당 이식
“이순신은 천지를 주무르는 경천위지(經天緯地 : 온 천하를 다스림)의 재주와 나라를 바로 잡은 보천욕일(補天浴日)의 공로가 있는 사람이다.” 명나라 장수 용애 진린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죽은 순신이 산 왜놈들을 격파하였다.” [人皆謂死舜臣破生倭] 선조실록 사관(史官)
“이순신도 제갈량과 같이 나라를 위해 죽었다.” [與武侯同同死國事] 신도비문중에서 영의정 잠곡 김육
“노량에서 이순신 장군은 임종 앞에서 기(旗)를 휘두르며 북을 치라고 분부했다. 그의 아들이 그의 명령대로 실행하였으므로 산중달을 패주케한 제갈량의 주책(籌策)을 쓴 것이며 이는 가장 범상치 않은 일이다.” 하담자유고 판중추부사 김시양
“제갈량은 병으로 죽었는데 이순신은 전쟁에서 죽었고, 또 제갈량이 죽자 촉한(蜀漢)의 왕실은 위태로워졌는데 이순신은 그의 죽음으로 나라의 명맥을 영원히 살려 놓았다.” 관음포 유허비 연천 홍석주
“나는 일찍이 이통제사 따라 수군에 편입되어 있어 공을 세웠다. 통제사가 죽자 계속하여 충민사에 있은 지 수십 년, 80살인 나는 스스로 제물을 차려 제사 지냈다. 바다 위에 무슨 일이 있을 때는 통제사가 반드시 먼저 나의 꿈속에서 나타나 뵈올 때 알려주니 틀림이 없었다. 이것은 아마 충무공의 영혼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며 한 조각 나라를 위하는 마음만은 육체는 죽었어도 죽지 않고 있는 것일 것이다. 승평의 승(僧) 옥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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