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삶에 있어서

어머니를 통해서 본 하나님의 사랑 창기십자가

 

이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사람을 꼽으라고 하면 여인을 꼽을것이다.

벌레 한마리도, 움틀이는 지렁이도, 뭐를 보도 놀라는 존재이다.

그래서 여인을 항상 연약한 그릇이라고도 표현을 한다.

그러나 이 여인이 이름만 바뀌면 실로 가장 위대한 사람이 된다.

여인에서 어머니로 바뀌면 말이다.

 

무거워서 짐을 별로 들지도 못하는 여인이

어머니가 되면 무거운 아이들도 잘 안고 다닌다.

짐승만 봐도 놀라던 여인이

어머니라고 하면 달라진다.

밤낮 칭얼대며 애를 먹이는 아이도

얼마나 열심히 정성을 다해서 키운다.

그리고 그 희생은 도무지 표현하지 못한다.

어디서 그런 희생이 흘러나오는지,

죽을때까지 오직 자식만을 위한 자신의 삶을 바친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이름이 어머니인것이다.

단지 이름이 바뀌었을뿐인데말이다.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생각해본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기 아들을 주셨다.'

그분은 이 땅에 오셔서 백성들을 아버지께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온갖 아양과 눈물과 희생을 치루셨다.

우리를 하늘 낙토로 데려가시기 위해서 어떠한 희생도 불사하지 않으셨다.

자기의 목숨까지 다 던지고 우리를 사랑한 그 사랑은

이 땅의 어머니들의 사랑과는 도무지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분은 창기를 사랑하기 위해서 창기의 남편이 되셨다.

이것이 창기십자가사랑인것이다.

 

사람들은 어떻게 보면 구세주의 십자가를 비난한다.

그러나 그 판단잣대는 애석하게도 자기의 주관이다.

인간이 어찌 하나님의 오묘한 신비를 알수 있으랴?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랑과 희생 또한 알수가 없다.

이 땅에 있는 자녀들 살리시기 위해서

2천년전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다.

그런데 그 십자가의 가장 큰 죄목중에 하나가 바로

창기를 사랑하고 취했다는것이다.

표현하지 않았을뿐 그것이 바로 창기십자가인것이다.

오늘날 하나님이 이 땅에서 살아계시다면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셨으니까

창기보다 더 타락하고 더러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또 이 십자가를 지실것이 아니겠는가?

그 사랑이 바로 창기십자가이다.

 

이 사랑을 바로 알고 영접한다면 얼마나 좋을가?

아버지품에서 어떤 행복을 누리며 살게 될것인가?

다시 한번 하늘을 바라본다.

아버지의 사랑이 어떠하심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