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인 라이가 일하는 경기도 가구공단의 한 공장. 먼지와 분진이 날리고 본드와 시너 냄새가 가득하다. 돌베개 제공 |
10년간 현장 취재와 만남 토대
차별당하는 현실과 배경 연구
‘아래로부터 다문화주의’ 제안
<우리는 모두 집을 떠난다> |
‘이주의 시대’다. 유엔은 2010년 현재 2억1400명이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떠나 이주자로 살고 있다고 헤아렸다. 1년 미만 체류자나 미등록 이주자가 포함되지 않은 수치가 그러하다. 1903년 하와이로 첫 해외 이주를 한 이래 ‘(주민) 송출국’이었던 한국은 지난 20년 새 외국인 유입이 가파르게 증가한 ‘이주 목적국’이 됐다.
이런 시대적, 국가적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10년 동안 경기도 가구공단부터 베트남 결혼이주여성의 친정집까지 찾아다니며 이주 문제를 연구해온 김현미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묻는다. 10년 현장 취재와 만남, 그를 통해 더 깊어진 고민을 모아 <우리는 모두 집을 떠난다>에 담았다.
책은 이주를 ‘그들’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상황으로 직시한다. 기아와 빈곤, 식민 지배를 피해 만주와 중앙아시아에 난민으로 떠돌았던 우리, 독일로 사우디아라비아로 돈을 벌러 떠나 한국의 가족에게 송금했던 우리, 한국의 경제와 정치에 불안을 느끼며 외국 생활을 꿈꾼 우리…. 이 모든 모습은 지금 한국 사회의
▲우리는 모두 집을 떠난다
이주노동, 결혼 이주, 난민 등의 문제와 겹친다.
먹고살기 위해 한국을 찾은 이주자들의 세상에서 “송금이 사랑”이다. 이들이 보낸 돈으로 본국 가족이 생계를 꾸리고 그 나라 경제가 돌아간다. 이 또한 우리나라의 모습이기도 했다. 때문에 22년째 ‘불법 사람’으로 한국에 살고 있는 네팔인 라이는 말한다. “우리나라가 잘살게 되면 우리 아이들은 (이주노동자로) 안 나오겠죠. 다음에 한국에 오면 관광 삼아 아이들을 데리고 다닐 거예요. 아이들에게 아빠가 어떻게 살았고 어디서 일했는지 다 얘기해주고 싶어요.”
네팔에서 그의 존재감을 확인시켜주는 것은 형이 보내주는 편지를 통해서다. 편지에는 그가 고생해서 번 돈의 쓰임새가 세세하게 기록돼 있다. 집을 지을 때 지출한 시멘트와 전기 비용, 누구에게 얼마를 빌려주고 받았는지…. 산업연수생제도조차 실행되기 이전에 한국에 온 그는 돼지우리에서 하루 22시간씩 일을 할 때도, 도장 공장에서 종일 페인트 냄새에 시달리는 요즘도 ‘성실한 불법 사람’이다.
“한국 사회의 경제적 풍요와 현란한 소비주의를 몸으로 떠받치고 있는 저임금 노동자인 이주노동자들에게 우리는 많은 부분을 의존하고 있지만”, 우리는 이들의 한국 체류를 불온하고 불법적인 행위로 규정한다. 일부는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인의 것을 빼앗아 간다는 방식의 증오심을 부추겨 정치적 이득을 꾀한다. 책은 이를 ‘이주의 정치화 현상’이라 말한다. “신자유주의 경제질서 이후 커져가는 경제·사회적 추락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과 불안을 자국 내 타민족과 외국인에게 전가”하는 상황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조선족이나 아시아 이주민이 한국의 영세 제조업이나 건축 분야의 값싼 노동자가 되기 시작했다. 90년대 들어선 조선족 여성들이 육아, 노인 및 환자 간호 등의 돌봄 영역으로, 중국 및 동남아시아 여성들이 결혼 배우자로 대거 유입됐다. 2011년 기준 미등록 체류자, 곧 불법 사람은 16만7780명이다.
결혼이주여성의 주요 출신국인 베트남의 경우 농촌 지역이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대상이 돼 피폐해진 지 오래다. 정부가 지역 협동조합에 지원을 중단하면서 농민 빈곤화는 가속됐고 홍수가 나서 집이 부서져도 하소연할 공적 장치가 없다. 새벽부터 밤까지 고된 노동은 ‘엄마에서 딸로’ 대물림되고 있었다. 외국인과의 결혼은 실현 가능한 대안으로 부상한 지 오래였다.
국제결혼은 “두 국가에 사는 자원이 빈약한 시민들이 이성애적 결합을 통해 가족을 구성하여 경제적 위기를 해결하려는 아래로부터의 실천전략”이다. 전에는 부모의 농사일을 도왔던 딸들은 이제 ‘송금’을 통한 ‘효’를 요구받는다.
책은 조선족 동포, ‘합법’ 이주노동자, 버마 난민, 이주 어린이·청소년의 문제도 두루 다룬다. 지은이는 연구 방식에서부터 ‘아래로부터의 다문화주의’를 강조한다. 그는 “한국의 다문화 담론이 국가에 차용되면서 정착형 이주자인 결혼이주자와 다문화 가족에 대한 담론으로 협소화되기 시작했다”고 지적한다. 국가의 시선, 자본의 이해관계로 이주자를 바라보지 말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존재로 바라보는 ‘아래로부터의 다문화주의’ 시선으로 보자고 한다.
이주자가 우리 것을 약탈해 간다고 보는 ‘자민족 중심주의’는 결국 정치의 퇴행이자 인종주의라고 그는 강조한다. “이주자 운동은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필수적”인 것은 결국 “우리는 모두 언젠가, 어떤 식으로든 집을 떠나”기 때문이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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