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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의 한국 생활

['냄비 속 개구리' 한국경제] 한국, 휴대폰·TV 등 IT도 中과 수준차이 거의 없어 '초박빙 경쟁'

['냄비 속 개구리' 한국경제]

 

한국, 휴대폰·TV 등 IT도 中과 수준차이 거의 없어 '초박빙 경쟁'

 

SK텔레콤 하성민 사장은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IT 전시회인 CES(국제전자박람회)에서 '차이나 쇼크'를 경험했다. 수백개 기업의 부스 가운데 하 사장이 유일하게 30분 이상 머문 곳이 있었다. 중국 통신장비 업체인 화웨이(華爲)관이었다. 하 사장은 "1년 사이 제품에서 촌스러운 느낌이 완전히 사라졌고 세련미가 느껴졌다"면서 "중국 업체라는 선입견을 배제한다면 부품·배터리·디자인 모든 부분이 삼성전자의 턱밑까지 쫓아왔다"고 말했다.

↑ 지난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이동통신 전시회인 ‘MWC 2013’에서 관람객들이 삼성전자 휴대전화를 살펴보고 있다. /성형주 기자

 

세계 주요 시장에서 중국 기업은 더 이상 한국의 추격자가 아니다. 중국은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인 IT·철강·조선 분야에서 이미 한국의 강력한 경쟁자로 등장했다. 대대적인 R&D(연구·개발) 투자와 정부의 적극적 지원책을 바탕으로 한국과 기술 격차를 순식간에 좁힌 것이다. 장기 침체에 빠져 있다가 엔저(円低)로 다시 기세를 올리기 시작한 일본과 기술 경쟁력을 갖추기 시작한 중국 사이에서 한국 제조업은 더욱 심각한 샌드위치 신세에 시달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中 IT 경쟁력 한국 거의 따라잡아"

세계 최대 IT 전시회인 CES는 세계 유수의 IT 업체가 기술력과 제품을 자랑하는 경연장이다. 삼성전자·LG전자 등 한국 기업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세계 최초·최고 성능의 TV와 휴대전화를 잇따라 선보이며 CES의 주연으로 자리 잡았다.

올해는 상황이 바뀌었다. 중국 업체가 주연으로 급부상했다. CES를 여러 차례 참관한 SK텔레콤 염용섭 정보통신실장은 "올해 CES는 'Consumer Electronics Show'가 아니라 'Chinese Electronics Show'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면서 "내년에는 중국 업체의 제품 경쟁력이 한국을 추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CES에서 110인치 UHD(초고화질) TV를 비장의 무기로 선보였다. 당연히 세계 최초 개발인 줄 알았지만, 중국의 기습이 기다리고 있었다. 중국 하이센스와 TCL도 110인치 UHD TV를 나란히 선보인 것이다. 중국이 적어도 하드웨어 제조 기술력에서 만큼은 한국 기업을 완전히 따라잡은 것이다. LG전자 권희원 사장은 "중국 업체의 추격 속도가 워낙 빨라 어떻게 뿌리칠 수 있을지 임원들과 밤낮으로 고민한다"고 말했다. 현재 TV업계에서는 중국과의 기술 격차는 6개월 미만으로 보고 있다. 권 사장은 "초박빙의 기술 격차를 점차 벌려나가는 것이 지상 과제"라고 말했다.

중장비·조선·석유화학 분야에서는 중국이 한국을 추월한 경우도 나오고 있다. 한국산 굴착기는 10년 전인 2003년까지만 해도 중국 시장을 휩쓸었다. 현대중공업·두산인프라코어 두 회사는 한때 중국 굴착기 시장의 50%를 차지했다. 하지만 중국 산이(三一)가 2008년 미국발(發) 금융위기가 불거진 이후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서면서, 지난해 한국 기업의 중국 굴착기 시장 점유율은 10% 중반대까지 떨어졌다.

조선산업은 지난해 11년 만에 '조선 수출 1위' 자리를 내주었다. 중국은 또 2011년 PET(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합성필라멘트사 등 한국이 세계 시장 1위를 지키던 12개 품목을 가져갔다.

◇"R&D 공세로 추월은 시간문제"

산업연구원은 제조업 전체(2011년 기준)로 한국의 기술력이 중국에 3.7년 앞서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한국과 중국의 기술 경쟁력 격차가 급속히 좁혀지고 있다고 우려하는 전문가가 늘어나고 있다.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전병서 소장은 "최근 5년 사이에 중국이 한국을 쫓아오는 속도가 2배 이상 빨라졌다"면서 "중국은 유인 우주선을 우주로 날릴 정도의 기술력을 가진 나라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중국의 산업 경쟁력은 압도적인 연구·개발 투자에서 나온다. 2010년 중국의 R&D 투자액은 우리나라(379억달러)보다 3배 가까이 많은 1043억달러에 달했다.

한재진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제조업 전체로 중국이 한국을 추월하는 것은 이제 시간 문제"라면서 "양적으로는 중국을 따라잡을 수 없는 만큼 R&D 투자의 효율성을 높이고 해외 우수 과학 인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