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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자유게시판

김연아, ‘銀’이지만 눈부셨던 ‘여왕의 진가’

 

전력을 다했다. 그렇기에 순위는 관계없었다. 연기를 끝낸 김연아는 허리를 숙이며 피로감을 드러냈다. 그 얼굴이 자연스레 누그러졌다. “실수 없이 마무리 했기 때문에 좋은 결과였다고 본다” 이 종목 사상 세번째 2연패가 무산됐어도 웃는 얼굴이었다.

 

프리는 지난 올림픽 여왕의 진면목이 발휘됐다. 풍부한 감정표현, 계산된 정확한 몸놀림. 단지 처음 2연속 3회전 점프의 득점은 소트니코바를 뛰어 넘었지만 스핀과 스탭 등에서 차를 보이며 자신이 가진 소질인 표현력을 보는 연기점수에서도 거의 대등했다.

 

밴쿠버 동계올림픽과는 완전히 다른 마음가짐으로 소치에 임했다. 지난 올림픽에서는 아사다 마오(浅田真央)와의 라이벌 대결을 제압했다. 올림픽 후 국내에서는 자신을 따르며 스케이트를 시작한 ‘연아키즈’로 불리는 스케이터들이 증가했다. 과열된 인기와는 다르게 경기에 대한 동기부여는 상승하지 않았다. 한국 빙상연맹 간부는 “올림픽이후 연습때마다 울었다”고 회상했다.

 

세계를 목표로 한 어린 선수에게 의욕이 생겨났다. 서울 근교를 거점으로 연습을 재개하고 후배를 지도하는 중에 “열심히 연습하는 모습에 자극을 받았다. 한국 피겨계를 위해 해야만 하는 것이라 느꼈다”고 한다. 차기 평창올림픽이 열릴 모국에 힘을 보탤수 있는 기쁨이 용솟음쳤다.

 

16세의 어린 두명의 선수와 함께 출전했다. 소치에 대한 의기충만을 “평창을 목표하는 선수와 함께 출전해 모국에 공헌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이번 올림픽을 끝으로 은퇴하며 장래에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으로서 선수의 환경개선에 노력할 꿈도 있다. ‘국민 여동생’이라 불리던 아이돌도 어느새 23세. ‘언니’로 성장해 은반과 이별을 고했다

/교도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