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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자유게시판

용서받아야 할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

 용서받아야 할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

어리석음 가운데 가장 어리석은 것은 ‘나만 잘났다’는 생각

쌍계사 입구 일주문의 주련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있다.
“이 문안에 들어서면 알음알이를 갖지 말라.
알음알이가 없는 빈 그릇에 큰 도가 충만하리라.
(入此門內 莫存知解 無解空器 大道充滿)”
알음알이는 기존의 고정관념, 선입견 등을 말한다.

각자의 마음그릇에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이
그득하다면 진리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마음그릇을 비워야만 참다운 도가 충만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마음그릇을 비울 수가 있을까?
불가에서 전통적으로 마음그릇을 비우는 방법은 참회이다.
참회란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

그러한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다짐이다. 

 자기 성품 속에서 죄의 반연을 없애는 것이다. 
죄의 반연이란 삼독(三毒) 즉 탐욕과 성냄, 
그리고 어리석음의 나쁜 인연을 가리킨다. 
구체적인 요령은, 바로 지금 이 순간부터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욕심 부리고 성내고 어리석었던 일 등의 순서대로 참회한다. 

 부처님이 바로 앞에 계시다고 가정하고, 
마치 할아버지와 대화하듯이 “부처님, 
이러저러하게 욕심,성냄,어리석음을 내었습니다. 
앞으로는 안 그러겠습니다.”하고 다짐한다.
이 때 중요한 관건은 ‘무조건적인 참회’여야 한다는 것이다. 
조건부 참회는 의미가 없다. 

고정관념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고정관념 안에서 하는 참회가 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길을 걷다가 느닷없이 뺨을 얻어맞았다 하자. 
그리고 화를 내었다면, 
나에겐 아무런 잘못이 없다손 치더라도 참회해야 한다. 

상대방에게 참회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자성 상에 불 댕긴 것을 참회하는 것이다.
어리석음 가운데 가장 어리석은 것은 ‘나만 잘났다’는 생각이다. 
남의 험담하는 것도 결국 ‘나 잘났다’는 생각이 밑바탕에 깔려있다. 
인과법을 철저히 믿지 않아 안달하거나 초조해하는 것도 어리석음이다.

결국 생각나는 것은 모두 참회꺼리라고 보는 것이 옳다. 
잘못을 참회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잘한 일까지도 모두 참회하라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 잘잘못을 따지는 것 자체가 이미 분별심이다. 
또한 잘했다는 사실이 자신의 기억 속에 존재함은 
이미 자성 상에 파장을 일으켰다는 반증이다. 
흰 구름이든 먹구름이든 하늘을 가리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이런 식으로 꾸준히 참회를 하다보면 몸과 
마음이 한없이 가벼워짐을 느끼게 된다. 
마음그릇에 담겨있던 온갖 분별의식이 비워지기 때문이다.
내 마음이 밝고 가벼워지니 세상이 온통 밝고 아름답게 보인다. 
환희심이 솟아난다. 

 어떤 분은, 참회하기 전에는 자신이 주위 사람들을 
용서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는데, 
알고 보니 진정 용서받아야 할 사람은 자신이란 걸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야말로 수행의 첫걸음이다. 
자기를 돌아봄이 잘 안된다면 그만큼 아상(我相)이 강한 것이다. 

 남의 눈 속의 티는 잘 보면서, 자기 
눈 속의 대들보는 보지 못하는 것이다. 
부처님께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다 보면 
비로소 진정한 자신에 눈뜨기 시작한다. 

 잘났으면 잘난 대로 못났으면 못난 대로,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흠뻑 사랑하게 되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참회를 통해 얻게 되는 귀중한 결실이다.
완전한 존재가 되기를 기다렸다가 자신을 
사랑하려 한다면, 인생을 낭비하게 된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인정하고 사랑할 수 없다면, 
언제 어디서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사랑할 수 있을까? 

 -월호 스님 쌍계사 승가대학 강사
[불교신문 2191호/ 12월28일자]
-생활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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