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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자유게시판

6.25전쟁 정전협정 및 한미동맹 60년

우리나라 분단의 아픔이 다시금 생각나는 6월 25일이에요. 6.25전쟁은 광복 후 그 기쁨을 제대로 누릴 새도 없이 전 국토의 대부분이 전투지가 되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비극이었지요. 전쟁 발발 이후 3년 뒤인 1953년 정전협정이 체결되었는데요, 벌써 반세기 넘게 시간이 흘러 올해가 벌써 정전협정 60년이 되었더랍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국민 상당수가 6.25전쟁이 언제 시작된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자그마치 성인의 36%, 청소년의 53%가 그에 해당한다는 정부조사 결과가 나왔어요. 전쟁을 직접 겪지 않은 세대가 늘면서 생긴 일이겠지만, 또 다시 같은 아픔을 반복하지 않는다는 차원에서 아픈 역사라도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  


 

폴리씨가 63년 전, 6.25전쟁이 일어났던 당시 상황과 전개과정 등에 대해 살펴보도록 할게요. 



 

광복의 기쁨도 잠시, 제2차 세계대전 종결에 이어 찾아온 민족의 시련
우리나라에는 6.25전쟁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선이 하나 있어요. 바로 남한과 북한의 경계를 알리는 38선이 그 것 인데요, 해방 직후 미군과 소련군에 의해 임시적으로 나뉜 북위 38도선이 6.25전쟁의 발발과 이후 정전으로 오랜 세월 분단을 나타내는 상징이 되어버렸어요. 

 
당시 우리민족에게 암담하기만 했던 주권 회복의 꿈은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과 함께 찾아왔는데요,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일본이 1945년 8월 15일 무조건 항복하면서 독립에 대한 꿈은 마침내 실현되는 듯 보였답니다.

 

 
[6.25전쟁 - 정전협정 60년]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과 함께 시작된 미국과 소련 간의 견제와 대립은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주었어요. 세계대전을 일으킨 나라들이 사라진 곳은 힘의 공백상태가 되었고, 이러한 지역들에서 미국과 소련의 이해관계가 부딪치기 시작했지요. 그리고 우리나라도 예외가 될 수는 없었죠. 

 
연합군으로서 제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주축국 미국과 소련이 이제 각 지역에서 정치적 이념적 대립을 하기 시작한 거예요. 특히 공산주의를 확대시키고 싶었던 소련의 욕심이 컸는데요, 당시 소련의 영향을 받은 중국이 1949년 공산당이 중심이 된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우면서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주었어요. 국내외적으로 이념적인 혼재와 대립이 생기기 시작했답니다. 

 

 
[6.25전쟁 - 정전협정 60년] 

 
이런 때 남한에 연합군으로 주둔해 있던 미국이 ‘한국을 태평양 지역 방위선에서 제외한다'는 방침을 세웁니다. 북한은 이 기회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소련의 지원을 받아 남침을 감행하는데요, 북한의 그 선택이 우리 민족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어 지금까지 이어질 줄 알았을까요? 아마도 몰랐을 거예요.  

 

 

6.25전쟁으로 3년간 전체 국토의 80%가 전쟁터로 변해가다! 
6.25전쟁은 민족전쟁인 동시에 '침략전쟁'이며 '이념전쟁'의 성격을 내포하고 있어요. 정전협정이 이뤄지기까지 약 3년간 지속된 전쟁으로서 남으로는 낙동강, 북으로는 압록강까지 전체 국토의 80%에 달하는 지역이 전투지로 변해 갔죠. 

 

 
[6.25전쟁 - 정전협정 60년] 

 
북한정권이 남북한 내부의 민족갈등 속에서 한반도를 무력으로 통일하려고 구상하면서 시작된 전쟁이었기에 북한군의 병력은 한국군에 비해 더 강한 상태였어요. 당연히 한국군은 각 전투에서 후퇴에 후퇴를 거듭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전쟁을 피해 피난을 가는 사람들이 긴 행렬을 이루었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처참한 생활을 해야 했어요. 

 
*자료 출처 : 국가기록원 나라기록 사이트 ( http://theme.archives.go.kr )
  
북한의 남침이 일어나자 미국에 알리는 동시에 유엔에 도움을 요청한 이승만 대통령. 6월 25일 남침과 함께 낙동강까지 밀렸던 한국군에게 전세가 역전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옵니다. 유엔군이 참전했기 때문이죠. 특히 여러분도 잘 알고 있는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이 9월 15일 시작되면서, 9월 말에는 전쟁이 일어나긴 전 상태까지 회복하게 이르러요. 정말 빠른 전세 역전이죠? 그리고 전세를 이어받아 남한과 북한을 나눈 군사분계선을 넘어 압록강까지 진격합니다. 

 
그러나 11월 15일 중공군이 대거 개입함으로써 전쟁의 모습은 다시 한 번 크게 바뀌게 되었어요. 물론 유엔군의 반격이 다시 시작됐지만 인해전술로 무장한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쟁이 약 1년간 숨 가쁘게 진행되어 갔어요. 

 

 
[6.25전쟁 - 정전협정 60년] 

 
그런데 전쟁이라는 게 시간이 지속되면 될수록 힘들어지는 법! 군사적으로 남북한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연합군과 중공군 및 소련군은 1951년 7월부터 휴전을 위한 만남을 시작하고 장기간의 논의 끝에 1953년 7월 27일 드디어 38도선의 임시군사분계선을 경계로 정전을 협의합니다. 지금으로부터 딱 60년 전의 일이죠. 


정전협정 60년! 한미 간 동맹관계로 지켜 온 평화 60년! 
올해가 6.25전쟁 정전협정 60주년이 되는 해라고 말씀드렸었죠?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정전협정보다는 북진 통일을 더 원했었다고 해요, 그러나 미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통한 군사적인 지원과 경제원조, 그리고 한국군의 병력을 지원해 준다는 약속을 하며 전쟁이 장기화 되는 것을 막았어요. 

 
[6.25전쟁 - 정전협정 60년, 한미동맹 60년] 

 
그렇게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한미동맹 관계를 지금까지 유지시켜 주고 있는데요, 우리나라가 안보뿐만 아니라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 여유를 좀 더 가질 수 있게 해주었어요. 현재는 아니지만 과거에는 군사력이 북한에 비해 미흡했던 우리나라는 평화와 안전을 위한 제도적 장치로서 미국과 동맹관계를 맺었고, 현재도 혹시라고 있을 수 있는 북한의 남침에 대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로서 한미동맹을 유지하고 있답니다. 

 
철저한 대비를 통한 평화 유지! 평화 통일이 되는 그날까지 계속돼야 되지 않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