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의 한국 생활

5·18 민주화운동과 천안문 사태는 ‘본질’에서 다르다

천산지기 2013. 5. 24. 07:16

오늘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이하 5·18)’ 33주년을 맞이하는 날이다. 많은 한국인은 이와 같은 민주화 운동이 오늘의 한국 민주주의를 이루어냈다고 자부하고 또 자랑한다. 아울러 그런 자부심과 자랑으로 주변 독재(?)국을 쉽게 재단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33년이 흐른 오늘 한국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 합창·제창으로 논란도 있는 것 같고, 혹자는 그 5·18을 폭동이라고까지 말하곤 한다. 이 시기에 고국의 박근혜 대통령은 5·18을 어떤 시선으로 보고 있을까. 그리고 5·18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중심에 서 있었던 전두환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조금은 몹시 궁금하다.

각설하고 이제 ‘한국의 5·18과 중국의 북경 천안문 사태는 본질에서 많이 다르다’는 점을 얘기하고자 한다. 한국의 5·18은 ‘자본주의 체제의 이념 속에서 군부독재에 항거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운동이었다’고 한다면 중국의 북경 천안문 사태(초기에는 인플레이션, 실업, 빈부격차, 부정부패 척결을 요구하면서 비롯됐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부패관리의 척결, 등소평 퇴진, 서구적 민주주의 실현 요구 등 반정권적, 반체제적인 양상이었다.)는 ‘사회주의 이념과 자본주의 이념이 대립하는’ 연속으로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와 거리가 멀었고 그 배경도 매우 달랐다.

그런데 많은 한국인이 착각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모든 독재에 항거하면 그 모든 항거를 민주화 운동으로 쉽게 단정’해버리곤 하는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것이 같은 점과 다른 점을 ‘이라크의 현실’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같은 점은 독재라는 점이고 다른 점은 이념 속의 자유와 이념 속의 대립이다.

미국을 비롯한 소위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이 이라크에서 사담 후세인 독재를 무너뜨리고 소위 말하는 자유민주주의 정권을 들어서게 했지만, 오늘의 이라크는 자유스럽지도 않고 그저 혼란만 넘쳐나고 있는 게 이라크 현실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이라크인들이 바라는 자유민주와 미국이 바라는 자유민주의 성격이 동상이몽이었기 때문에 오늘의 이라크가 혼란스럽다.

즉 다시 말하면 이라크 독재는 ‘이념의 대립에서 비롯된 독재로서 미국과 같은 이념에서 비롯된 독재와 자유가 아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한국의 5·18과 중국의 천안문 사태는 ‘본질에서 배경과 성격이 다르므로’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한국의 자유민주주의가 성공한 것은 같은 이념 속에서, 즉 자본주의 이념 속에서 자본주의 자유민주주의를 쟁취하였기 때문에 가능했지만, 중국의 천안문 사태는 중국에서 사회주의 이념과 다른 자본주의 이념의 대립 속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얻고자 하였으므로 그것이 불가능 했던 것이다.

만약 5·18도 당시 자본주의 이념을 떠나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이념의 자유민주주의를 얻고자 했다면 오늘의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은 없었을 것이다. 이것이 냉전 시기에 냉혹한 현실이었다. 따라서 필자의 견해로는 한국의 5·18과 중국 천안문 사태를 직접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본다.



연변통보 2013-05-18

주: 본문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