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취급받는 ‘세 종류’의 코리안
새벽 노동시장으로 이동하는 서울 대림역 근처의 조선족 노동자들. 그린비 제공 |
조선족과 고려인·재일조선인 이주와 역이주 원인 살피며 왜 차별받는지 예리하게 짚어
격동의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고국을 떠나야만 했던 코리안 디아스포라들이 돌아오고 있다. 조선족의 경우 이미 50만명 가까이 한국 땅에 들어와 살고 있다. 조선족 외에도 고려인과 자이니치(재일조선인) 등 재외동포들의 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세간의 시선, 한국인들의 눈길은 곱지만은 않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들은 피를 나눈 동포이면서도 “내국인으로부터 ‘소외’되고, 다문화 지원으로부터도 ‘배제’되는 사회적 지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귀환 혹은 순환-아주 특별하고 불평등한 동포들>은 조선족, 고려인, 자이니치 등 재외동포들의 이주와 역이주의 원인과 양상을 살피면서, 그들이 왜 이 땅에서 차별받는가를 짚어낸다. 더 이상 ‘저 밖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이 안에’ 있는 존재가 되었음에도 외국인과 동포 사이의 공간에서 “특별하고 불평등한 동포”가 될 수밖에 없는 원인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현재 재외동포법은 재외동포들에게 ‘준시민권’을 부여하고 있지만, 그들은 이 땅에 귀
환한 것이 아니라 ‘체류’하고 있을 뿐이다. 1장 ‘동포와 이주자 사이의 공간, 또는 민족과 국가에 대한 상이한 성원권’을 쓴 신현준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인문한국(HK)
교수는 재외동포법의 역사를 일별하면서 북아메리카·유럽·일본 등 자본주의 선진국의 동포는 ‘바람직한 동포’로, 사회주의 개발도상국 동포들을 ‘바람직하지 않은 동포’로 구분하는 데서 차별의 연원을 찾는다.
재외동포들의 삶의 굴레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귀환 혹은 순환>은 꽤 짜임새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재외동포들의 삶의 실체에 접근한다. 동포들의 이동 동기와 양상 등을 세밀하게 추적하는가 하면, 왜 재외동포들이 삶의 터전을 버리고, 위험까지 감수해 가며 한국이라는 공간으로 이주하고 있는가를 분석한다. 이를 위해 지은이들은 조선족, 고려인, 재일조선인 등 재외동포들에 대한 심층면접과 참여관찰에 최대한 공을 들였다. 이를 통해 “세 종류의 ‘코리안’들이 남한의 공간으로 이동하는 과정, 상이한 장소들에서 영위하는 상이한 생활세계의 형성”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그네들의 아픈 삶의 모습은 결국 이 땅에 뿌리박고 사는 우리들의 못난 텃새 탓이다.
재외동포를 차별하는 원인 중 정치·사회적 요인 못지않게 최근 부각되고 있는 것이 경제적 요인이다. 특히 조선족은 “일자리를 빼앗으러 오는 경쟁자” 또는 “우리말을 할 줄 아는 값싼 인력”에 지나지 않는다. 3디(D) 업종의 일이라면 손사래 치면서도, 그들이 이 땅에 들어와 그 일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지켜보기 힘든 게 우리네 인식이다. 경제 불황이 지속될수록 재외동포에 대한 몰이해와 차별도 커질 수밖에 없고, 그렇게 귀국 동포들은 불청객으로 우리 사회를 떠돌 수밖에 없다.
지은이들은 재외동포들의 한국 이주를 귀환이 아닌 ‘순환’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한국에서의 안정적인 정착과 시민권 획득이 주목적이었던 동포들의 귀환이 서서히 “한쪽으로의 일회적 귀환이 아닌 양쪽을 왔다 갔다 하는 이동성의 증대”로 변모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구화 시대가 되었을뿐더러, “생계를 위해 양쪽을 이동하는 것”이 그만큼 자유로워졌다는 사실을 <귀환 혹은 순환>은 여실히 보여준다.
이동이 자유롭다고 해서 그들의 삶이 나아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혈연적 민족과 법률적 국적 사이에서 내부자도 외부자도 아닌 모호한 상태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지은이들은 재외동포는 물론 외국인에 대한 차별적 시선과 마주하는 것, 곧 대면(interface)만이 문제 해결의 단초를 열 수 있다고 말한다. 문제를 직시해야 구조를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태생적으로 누군가에게 이방인일 수밖에 없다. 이 한가지만 기억한다면 재외동포에 대해서도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다. <귀환 혹은 순환>을 읽는 시간 내내 누군가에게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나를 발견했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장동석 출판평론가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