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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의 한국 생활

위험에 처한 조선족 한글

 대전동방문화진흥회와 함께 백두산에 다녀왔다. 첫 방문지는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주도(州都) 연길(延吉)이었다. 연길 공항을 빠져 나오면서 첫 눈에 들어온 것은 한글로만 된 안내문이었다. “공사중 불편한 점 량해 부탁드립니다” 공항 청사 일부가 수리중이었다. 

 


연변이 초행인 필자로선 ‘그래도 중국 땅인데 안내문이 우리말로만 되어 있다니!’ 하는 놀라움으로 공항을 빠져나와 주변 광고판을 둘러봐도 한글의 위세는 꽤 당당해 보였다. 모든 간판은 한글과 한자로 병기되고 있었다. 간판 위쪽에 한글로 쓰고 아래쪽에 한자로 쓰거나, 한글을 왼쪽에 쓰고 한자를 오른쪽에 붙였다. 조선족 가이드는 간판 규정이 그렇게 돼 있다고 했다.

하지만 한글은 위험에 처해 있었다. 조선족 자치주에 속한 돈화시(敦化市)에선 한글 병기를 지키지 않으려 하고 있다. 규정 때문에 한글을 함께 쓰지만 한문을 위쪽에 더 크게 쓰고 한글은 아래에 작게 쓴 간판이 많았다. 한글은 아예 빼 버리고 한자만 쓰는 경우도 있었다.

엉터리 한글 간판 늘어나는 연변 자치주

돈화시에는 청나라 황제들을 모신 ‘청조사(淸祖祠)’가 있다. 만주족의 역사와 문화를 기리는 공간으로 2011년에 문을 열었다. 청조사 바로 앞의 부조물에 내걸린 안내표지는 한글의 현주소를 알려주었다. ‘금지등반하여넘다’라는 한글과 함께 ‘禁止攀越’(금지반월)이라고 쓰여 있었다. 영어(Prohibiting Climbing)로도 적고 월담금지 표시까지 넣었으니 누구든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팻말이 한글로만 적혀있다면 이게 무슨 소린가 했을 것이다. ‘금지등반하여넘다’는 한문을 한글식으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 가이드는 “돈화시에는 병기 규정 때문에 한글을 함께 쓰지만 엉터리 간판이 많다”고 했다. 간판조차 제대로 만들 수 없을 정도로 한글을 모르고 알고 싶은 생각도 없기 때문이다.

언어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변화한다생성되기도 하고 소멸되기도 한다. 조선족 한글도 현지화(現地化)는 불가피하다. ‘한자식 한글은 있을 수밖에 없다어디선가 <여가여관 如家旅館>이란 간판도 눈에 띄었다내집 같이 편안한 여관이란 뜻일 게다그 정도면 문제 될 게 없다

그러나 지금 조선족 한글은 단순한 현지화가 아니라 사라져 가고 있다한글은 ‘의미 없는 부호’로 전락해 가고 있다. 그야말로 객지에서 ‘고생’하는 한글이었다. 모국인 우리나라에서도 영어에 밀리고 치이면서 고생을 하는 편이지만 조선족 자치주에서는 단순한 고생이 아니었다. ‘죽음의 길’로 가는 환자의 나쁜 예후였다.

2011년 문을 연 돈화시 청조사에 내걸린 안내문

▲ 2011년 문을 연 돈화시 청조사에 내걸린 안내문


조선어학교 대신 중국학교로 입학하는 조선족

한글뿐이 아니다. 말도 사라져 가고 있다. 조선족 자치주에는 조선말로 가르치고 배우는 조선어학교가 아직은 적지 않다. 연길에만도 10개가 넘는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어학교에 입학하는 조선족 학생은 계속 줄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시발점은 조국(남한)한테 있었다. 조선족들은 TV생중계로 88서울올림픽을 지켜보면서 조국의 발전상을 알았고, 너도 나도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현재 조선족 인구 210만 명 가운데 40만이 한국에 나와 있다. 그 자리를 한족(漢族)들이 메우면서 60%가 넘던 조선족 비율은 40%로 줄었다.

무엇보다 한글을 위협하고 있는 것은 중국의 경제성장이다. 조선족 학생들은 더 좋은 기회를 얻기 위해 중국 경제의 중심인 상해나 북경으로 진출하려 한다. 그러려면 초등학교부터 조선어학교보다 중국학교에 들어가는 게 유리하다. 중국학교에 다니면 조선어보다 중국어를 더 쓰게 된다. 가이드도 아이가 집에서도 자꾸 중국어를 써서 혼을 내주곤 한다고 했다.

거기서도 농촌 총각들은 장가드는 게 힘들어졌다. 한국과 다르지 않다. 돈 많은 농촌 총각 중엔 한족 여성과 결혼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는 다문화 가정으로 전환을 의미한다. 조선족끼리 결혼하던 관행이 깨지면서 한글이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조선족 인재들의 중요한 경쟁력 중 하나는 모국어다. 중국의 민간기업들은 중국어와 함께 한국어까지 자유롭게 구사하는 조선족을 선호한다. 가이드는 “같은 칭화대를 나와도 한족보다 조선족 학생이 더 인기가 있다”고 했다.

한글이 조선족 대학생들의 경쟁력을 높이고 있지만 이것이 결국은 한글을 위험에 빠뜨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조선족 부모는 자식에게 우리말조차 별도로 가르쳐야 할 상황으로 가고 있다. 조선족 학생에게도 한글이 또 하나의 외국어로 전락하면 그들의 한글 경쟁력도 결국엔 사라지고 말 것이다.

조선족 자치주 유지 힘들 수도

한글에 대한 ‘정치적 위험성’도 점차 커지고 있다. 돈화시는 조선족 자치주에서 떨어져 나가려 하고 있고, 돈화시의 이런 요구가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조선족 자치주를 유지하는 것이 힘들어질 수도 있다. 출처를 말하진 않았으나 가이드는 그 가능성이 70%라고 했다.

중국 정부의 동북공정은 소수민족인 조선족의 역사와 문화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중화인민공화국 정부 출범 후 우리 민족을 포함한 일부 민족에 대해 ‘자치’를 허용한 것은 이민족에 대한 유화 정책이지 권장은 아니었다.

소수민족에 대한 중국정부의 기본 입장은 동화정책이다. 모택동이 70년대부터 한족을 소수민족 지역에 이주시키는 정책을 편 것도 그 일환이었다. 그렇게 연변에도 한족들이 이주해왔고 이젠 그들이 연변의 주역으로 등장하고 있다. 중국정부로선 이제 결실을 눈앞에 두고 있는지 모른다.

조선족이 더 좋은 대학, 더 나은 직장을 위해 사방팔방으로 흩어지면서 연변은 한족들의 무대가 되어가고 있다. 한때 조선족 소유였던 집과 땅을 한족들이 사들여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조선족 자치권이 위협받고 있고, 모국어와 한글도 위험에 처해 있다.

하얼빈에 있는 한글 간판 김밥집. 주인은 중국인이다.

▲ 하얼빈에 있는 한글 간판 김밥집. 주인은 중국인이다.


조선족이 우리 말과 글을 잃어버린다면..

스마트폰 문화에서 한글의 우수성이 확인되고, 한류 영향으로 한글을 배우겠다는 세계의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중국에서도 한국 김밥이 인기다. 하얼빈에는 간판을 한글로 내건 김밥집도 있었다. ‘김희순’이란 한글 간판이 눈에 들어와 다가가 보니 주인은 중국 사람이었다.

‘상품’과 ‘상표’로서의 한글은 세계 도처로 뻗어나가고 있지만 중국내 우리 민족에겐 삶의 언어와 문자로서 위험한 상태로 빠지고 있다. 가이드는 “우리 자식들 대(代)까지는 어떻게든 한글을 잊지 않도록 하겠지만 그 후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씁쓸해 했다.

말과 글을 잃은 민족의 처지는 만주족이 잘 보여준다. 청(淸)을 세워 중국을 호령하던 만주족은 자기 말과 글을 잃어버렸다. ‘위키백과’는 중국내 만주족 980만 가운데 만주어를 완전히 알 수 있는 사람은 20명이 안 된다고 설명해놓고 있다. 그들에겐 역사만 있을 뿐 미래가 없다. 말과 글을 잃어버리면 자신을 되찾을 방법이 없다.

조선족이 우리 말과 글을 잃어버린다 해도 그들에겐 모국어를 쓰는 조국이 있다는 점이 만주족과는 다른 점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우리말과 글을 잃어버리고 한족과 동화되어 살아간다면 계속 조선족으로 남을 수 있을까?

 
위업방심육을 위엄방심육으로 썼다. 간판의 오자(誤字)는 쓴 사람이 한글을 모른다는 말이다.

▲ 위업방심육을 위엄방심육으로 썼다. 간판의 오자(誤字)는 쓴 사람이 한글을 모른다는 말이다.


 
여가여관(如家旅館). 현지화 된 한글.

▲ 여가여관(如家旅館). 현지화 된 한글.

 

/디트뉴스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