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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의 한국 생활

지번주소VS도로명주소

이제 도로명+건물번호로 주소가 바뀌는데요, 지금까지 사용한 지번주소와는 찾는 과정이 어떻게 다를까요? 두 명의 실험맨과 현장실험을 해 봤습니다.

 

지번주소 VS 도로명주소

 

지번주소 찾기 실험조건 : 김고생(가명) 씨는 마포구 신수동에 있는 친구집을 찾아가기로 했어요. 휴대폰은 사용할 수 없고, 그가 받은 주소는 마포구 신수동 93-XXX이라고 적힌 지번주소입니다. 친구는 “신촌을 지나 서강대 정문 근처 신수동”이라고 설명해 둔 상태에요.

 

도로명주소 찾기 실험조건 : 나편해(가명) 씨 역시 같은 집을 찾아가기로 했는데요, 휴대폰은 없습니다. 그가 받은 주소는 마포구 신수로 9길 XX. 도로명이 적힌 새 주소입니다. 친구는 나 씨에게 ‘신촌로-백범로-서강로 16길-신수로’라는 길 이름순서만 알려주었어요.

 

 


 



 

지번주소를 찾아라!


1. 이화여대 정문 출발 - 첫번째 부동산중개업소 방문 오후 2시. 김고생 씨는 출발하자마자 이화여대 앞 부동산중개업소로 들어갔습니다. 서강대가 어느 방향인지부터 찾아야 했기 때문이죠. 중개업소 벽에 붙어 있는 커다란 지도에서 신수동의 소재부터 파악했어요. “서강대 정문 근처네요.” 부동산 아저씨는 예상대로 주변의 랜드마크를 일러줬고요. “서강대로 간 다음 그곳 주민한테 한번 더 물어보는 게 나을 것 같아요.” 


 

김 씨는 이대역에서 신촌역까지 무작정 걷기 시작했는데요, ‘신수동’을 알 수 있는 표식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2. 서강대로 가는 길 뒷골목 - 두 번째 부동산중개업소 방문 김 씨는 ‘서강대’라는 건물명만 듣고 출발했기 때문에 시간이 꽤 걸렸어요. 그는 여러 갈래로 뻗은 골목에서 헤매기 시작했습니다.
 

주택가로 보이는 길에서 주변을 둘러봤지만 서강대는 눈에 띄지 않았어요.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혔습니다. “오늘 안에 찾을 수 있겠죠?” 그는 한숨을 쉬며 골목길을 빠져나왔어요.  

 

두 번째로 눈에 띈 부동산중개업소에 들렀는데요, 중개업소 직원은 벽에 있는 지도를 뚫어져라 쳐다봤습니다. 주소지가 적힌 종이와 지도를 번갈아 보기를 몇 번 하고 나서 “서강대 정문 앞에서 건너 삼익아파트 뒤”라고 설명해 주었어요. 역시 건물 이름을 중심으로 알려줬습니다. 

 

3. 서강대 정문 - 목적지 도착
서강대 정문에서가 고비였다. 부동산중개업소 직원이 설명한 대로 서강대 정문에서 건너 삼익아파트 건물을 찾았습니다. 김 씨는 소리를 질렀어요. “저 뒤다!”

 

하지만 아파트 뒤 골목으로 들어서자 여러 방향으로 또 다른 골목길이 나타났습니다. 어느 길목으로 들어가야 할지 한참을 망설이던 김 씨는 “에잇, 복불복이지 뭐!” 하면서 첫 번째 골목부터 뒤졌어요. 건물마다 희미하게 지번주소 번지가 적혀 있었는데요, 집집마다 대문 앞에 코를 박다시피 해 흐릿하게 적힌 번지를 확인하던 김 씨는 들어왔던 길로 다시 나오기를 반복했습니다.  

 

반대편 골목으로 들어선 그는 아파트 뒤편 골목을 지그재그로 9번 방향을 튼 뒤에야 마지막 골목에 있는 목적지(친구 집)에 도착할 수 있었어요. 오후 2시 34분. 그나마 운이 좋았어요. 김 씨가 부동산중개업소에서 말해 준 ‘아파트 뒤편’이라는 말을 듣지 않고 첫 번째 골목에서 헤맸다면 시간이 훨씬 더 걸릴 수도 있었습니다. 김고생 씨는 “지도는 정말 인류의 혁명이었네요” 라며 혀를 내둘렀어요. 

 

도로명 주소를 찾아라!
1. 첫 길 신촌로 발견
도로명주소 찾기 실험자 나편해 씨는 주변에 길을 묻지 않고 찾아갔습니다. 첫번째 도로 ‘신촌로’ 이정표부터 쉽게 발견했기 때문이죠. 나 씨는 길을 찾는 내내 “엄청 쉽네~!”라며 연신 싱글벙글이었습니다.

 

당시 그는 주소가 적힌 종이와 ‘신촌로-백범로-서강로 16길-신수로’라는 길의 정보를 갖고 있었어요. 그 외 주변 건물명이나 랜드마크는 전혀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도로명주소의 경우 도로의 ‘폭’에 따라 ‘대로’와 ‘로’ 그리고 ‘길’로 구분돼요. ‘대로’는 폭이 40미터이거나 8차로 이상의 큰길을 말하는데요, ‘로’는 12~40미터이거나 2~7차선을 말합니다. ‘길’은 기타 작은 골목길을 뜻해요. 신촌 로터리에 이어진 모든 도로는 8차선이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는 ‘신촌로’를 지나 두번째 길인 ‘백범로’를 향해 내려갔어요. 10여 분 정도 지났을까. 신촌 로터리로 불리는 신촌역 사거리가 나왔어요. 파란색의 표지판들이 동서남북 방향으로 뻗어 있었습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이정표를 응시하며 두리번대던 나 씨는 “아하!”하면서 손가락을 튕겼어요.

 

2. 백범로-서강로 발견
“왼쪽 길은 홀수 번호, 오른쪽 길은 짝수 번호네요!” 나 씨는 뻗어있는 길들 중 몇 곳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도로명주소의 규칙을 빨리 이해했던 것입니다. 신촌 로터리에서 왼쪽으로 향한 화살표시 표지판에는 ‘백범로’라고 적혀 있었어요. 백범로에 들어서자 그는 손가락으로 오른쪽 표지판을 가리키며 말했어요. “오른쪽이 짝수니까 서강로 16길은 이쪽에 있겠네요.” 서강대로 향하는 오르막 길에서도 골목 정문에 이르러 나 씨는 세번째 길인 ‘서강로 16길’을 발견했습니다.

 

3. 신수로-목적지 도착
목적지인 ‘신수로’는 쉽게 눈에 띄었어요. 신수로에 들어서자 오른쪽에 순서대로 13길-11길-9길 표지판이 이어졌습니다. 나 씨는 ‘신수로9길’을 찾아 들어갔어요. 집마다 건물 번호가 붙어 있었습니다. 건물 번호 역시 왼쪽이 홀수, 오른쪽이 짝수였다. 
 

 

나편해 씨는 책 속의 색인을 발견한 듯 입으로 숫자를 세며 한결 느긋한 발걸음으로 목적지에 도착했어요. 그는 “와, 도로명주소로 왜 이제야 바뀌었나 모르겠어요”라며 “1·2·3 숫자와 왼쪽 오른쪽 구분만 하면 이제 누구나 찾을 수 있겠네요~”라고 말했습니다. 

 

 



 

  

실험결과는?

실험 결과는 가설대로 도로명주소 찾기의 ‘승’이었어요. 지번주소 찾기로는 33분 45초, 도로명주소 찾기로는 24분 4초가 걸렸습니다. 도로명주소 찾기가 9분 정도 빨라 약 30퍼센트의 시간을 절약했어요. 길을 잃을 때마다 주변에 일일이 물어야 하는 수고도 덜 수 있었습니다. 

 

모르는 곳을 찾아가는 데 걸린 시간에서 차이가 나는 이유는 지번주소보다 도로명주소가 규칙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번주소 찾기 실험맨 ‘김고생’ 역할을 맡아준 김종윤(30) 씨는 땀을 닦으며 “부동산중개업소가 아니었으면 찾아가지도 못할 뻔했다”고 말했어요.  

 

그는 처음엔 자신이 “길을 잘 찾는 편”이라며 자신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지번주소 찾기는 생각보다 어려운 과제였던 모양입니다. 실제로 신촌 근처에 잘 오지 않았던 김 씨는 스마트폰이 없어 길을 헤맬 때 정말 답답했다고 토로했어요. “여러 골목을 헤맬 때마다 대체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몰라 막막하더라고요.”

 

김 씨는 길을 찾는 과정에서 “지번주소의 경우 주요 건물이나 지명을 말해 주면서 길을 알려주니까 근처 지리를 잘 알지 못하면 더 헤맬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김 씨가 방문한 두 곳의 부동산중개업소 모두 ‘신촌로터리’, ‘서강대’, 그리고 ‘삼익아파트’와 같은 유명한 지명이나 건물을 알려줬어요. 전통적인 길찾기로 아직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입니다.

 

김 씨는 “우리말이 서툰 외국인들이었다면 종이 지도를 가졌더라도 이런 골목에서 집을 찾기란 정말 어려웠을 것”이라며 “길을 물어서 간다고 해도 ‘어디 옆, 무슨 건물 뒤’ 이런 식으로 말하다 보니 실제로 그 건물을 찾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길찾기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도로명주소 찾기 실험맨 ‘나편해’ 역할을 맡았던 이윤식(26) 씨는 “마치 사전의 색인 찾기를 하는 것처럼 편했다”고 전했어요. 이 씨는 “처음에 길 이름을 들었을 때는 도로 명칭 자체가 낯설어 찾아갈 수 있을까 고민했다”며. 하지만 막상 길을 나선 뒤에는 금세 익숙해졌어요. “골목마다 길 이름과 번호가 나와 있으니까 길을 놓쳤는지 바른 길로 가고 있는지 몰라 뒤돌아본다거나 하지 않았어요.”

 

한편 도로명주소로 목적지를 찾아가려면 대로와 도로 이름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점도 알게 됐습니다. 이 씨는 “실험 조건에서 길 이름을 차례로 명시해 주지 않았다면 이렇게 쉽게 찾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